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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유기농 선구자` 故강대인 뜻 잇는 청년농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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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현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가운데)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위치한 논에서 모내기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은 한국 유기농 선구자인 故강대인 농부의 부인인 전양순 여사, 오른쪽은 딸인 강선아 우리원 대표. [정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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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오후 전남 보성군 벌교읍.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원농장을 찾았다.

이 곳은 우리나라 유기농 벼농사의 선구자로 불리는 故강대인 농부의 꿈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그 누구도 유기농에 관심이 없던 시절 쌀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가 하나 둘씩 일궈온 곳이다. 지금은 첨단의 쌀 도정시설과 발효식품 생산공장, 친환경 농업을 널리 보급하기위한 교육원까지 들어섰다.

이 곳을 찾은 이유는 청년 농부들의 토론회 현장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특히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현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와 민승규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현 한경대 석좌교수)이 청년 농부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혁신 전도사로 나선 김 전 부총리는 최근 들어 농업인들과 만남을 늘리고 있다. 소상공인과 기업인 뿐만 아니라 농업인들을 혁신의 주체로 키우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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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기농의 선구자로 불리는 故강대인 농부가 생전에 막내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엽서 크기 그림을 사진으로 찍었다. [정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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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에 앞서 故강대인 농부의 딸인 강선아 우리원 대표가 부친을 회고했다. 고인은 국내 유기농의 역사로 통한다. 1974년 쌀농사를 처음 시작한 고인은 부친이 농약 중독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고 79년부터 유기농업으로 전환했다. 국내에 유기농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아 소출이 남들만 못해도 유기농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농법과 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악전고투 속에 95년 국내 최초로 유기농 재배 품질인증을 획득한 고인은 농업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고인은 벼 포기 사이사이를 넓게 하고,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오리농법이나 쌀겨농법 등 자연농법을 통해 논과 벼를 건강하게 키우는 데 평생을 바쳤다. 지금도 우리원에서는 백미 뿐만 아니라 발아미, 흑미, 녹미, 적미, 현미 등 다양한 기능성 쌀을 생산한다. 쌀을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가정에서 먹을 수 있도록 도정도 소량으로 하면서 소형 포장 판매에 주력한다. 지난 2010년 단식기도에 들어갔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후 우리원은 그의 부인인 전양순 여사와 딸 강선아 대표가 함께 이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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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왼쪽 셋째)가 故강대인 농부의 부인인 전양순 여사(둘째), 딸인 강선아 대표(첫째)와 함께 우리원농장에 있는 장독대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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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는 어머니 권유로 한국벤처농업대학에 입학했다가 자신도 모르게 일일 강사로 나선 아버지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는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이후 13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강 대표는 벼 재배(1차 산업)와 발효 가공식품 생산(2차 산업), 농산물 유통과 친환경농업 교육(3차 산업) 등 이른바 '6차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일궈나가고 있다. 강 대표는 지금도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못하고 있다. "농사는 풀을 기르는 하농(下農)과 곡식을 기르는 중농(中農), 땅을 기르는 상농(上農), 마지막으로 사람을 기르는 성농(聖農)이 있단다. 자연을 살리고 안전하고 바른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도 농업인의 길이고, 바른 사람을 기르는 업 또한 농업인의 길이란다."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강 대표는 단순히 농사를 짓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사회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요즘은 전국 청년 농부들로 구성된 청년농업인연합회(청연) 초대 회장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도 연합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10여 명의 청년 농부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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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농업인연합회 소속 농부들이 토론회를 갖고 있다. 이날은 `허준의 딸기보감` 브랜드의 마케팅 방안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정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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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의 화두는 단연 딸기였다. 딸기 농사를 짓는 회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참석한 데다 새로운 딸기 브랜드를 론칭하려는 동료를 도우려는 마케팅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제시됐다. 새 브랜드의 주인공은 충남 논산에서 온 청년 농부 허준 씨였다. '주니팜'이라는 딸기농장을 운영하는 허 씨는 얼마전 연합회 동료들 제언에 따라 '허준의 딸기보감'이라는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우연히도 같은 이름인 허준의 동의보감이 모티브가 된 브랜드명이다.

동료 회원들이 다양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놨는데,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알려진 인도산 '부트졸로키아'와 연계하는 방안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요즘 젊은층의 입맛 컨셉인 매운맛을 딸기에 접목해 보자는 것이다. 전남 보성에서 키위와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며 잼 공장도 운영하고 있는 정순오 도담 대표의 아이디어다. 정 대표는 "딸기를 부트졸로키아 잼에 찍어먹는 상상을 하면 짜릿하지 않냐"고 말했다.

이밖에 딸기에 대침이 찍힌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홍보해야 한다든가 한약재 가루를 뿌려 키운 한약딸기를 길러보라는 등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민승규 전 차관은 즉석에서 경남 거창의 딸기 명인이 운영하는 농장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연락을 해줄테니 그 곳을 찾아가 최고의 딸기 재배 기술을 배우라"고 격려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의 주인공인 허준 씨는 "사실은 친구따라 귀농한 4년차 농부로 그동안 생각없이 농사를 짓던 것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며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마음을 다잡고 허준이라는 이름을 빛낼 수 있는 딸기를 재배해야 겠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 유기농 벼 재배에 평생을 바치며 한국 농업의 새 역사를 썼던 故강대인 농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날 토론회가 보여준 것 같아 흐뭇했다.

[벌교 =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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