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외교부 3가지만 사전통보
책임통감·총리사죄·국고거출”
기자들에도 같은 내용 미리 알려
일본에 얻은 것만 발췌통보한 셈
정의기억연대 주최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39차 정기수요시위에서 이나영 정의기역연대 이사장이 인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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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의 7일 기자회견으로 촉발돼 이를 빌미로 한 이른바 ‘윤미향 논란’이 일파만파다.
논란은 크게 두 축이다. 한 축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이상한 회계 처리’를 둘러싼 언론의 의혹 제기이고, 다른 한 축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2015년 12월28일 합의(12·28 합의) 전후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의 이른바 ‘말바꾸기’ 논란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자는 정대협 대표를 거쳐 정의연 이사장을 맡은 바 있다.
정의연의 ‘이상한 회계 처리’ 논란은, 언론의 의혹 제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 모금한 돈을 목적과 달리 쓰거나 개인이 유용한 사례는 드러나지 않았다. 국세청 쪽도 “일부 잘못 기재된 게 있지만, 재무제표 결산상으로는 정상적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잠정 판단을 내놨다. 한경희 사무총장이 11일 기자회견에서 “데이터(회계) 처리에 대해서는 저희가 사과드린다. 고쳐나가겠다”고 밝히는 등 정의연 쪽이 거듭 ‘사과’와 ‘개선 노력’을 다짐하고 있다.
논란의 다른 한 축인 이른바 ‘윤미향 말바꾸기’ 논란은 그 전개 양상이 아주 고약하다. 이 문제는 ‘12·28 합의’ 당시 한국 사회의 대응 태도와 닿아 있어 정확한 사실 관계 확인과 ‘진실 규명’이 절실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합의 기반을 침식하고, 한-일 관계에서 한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어서다.
■ 윤미향은 미리 다 알고 있었나? 언론의 관련 보도를 압축하면,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가 한-일 국장급 협의 당사자인 이상덕 당시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한테서 사전에 주요 내용을 다 듣고 긍정적 반응을 하고는, 합의 발표 직후 돌연 반대 태도로 돌아서 협상 당사자들이 당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청와대·외교부 관계자들”(<중앙일보> 9일치 10면), “당시 협상 과정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조선일보> 9일치 4면), “전직 외교부 최고위 당국자”(<동아일보> 12일치 12면), “당시 협상을 총지휘했던 전직 외교부 고위당국자”(<국민일보> 13일치 5면) 따위다. 모두 익명 주장이다.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1차장이던 조태용 미래한국당 당선자가 10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윤미향 대표에게 사전설명을 했다’는 외교부의 입장을 분명히 들었다. (윤미향 당선자의) 말바꾸기를 주목한다”고 한 게 유일한 실명 주장이다. 12·28 합의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이병기 비서실장, 외교부의 윤병세 장관과 이상덕 국장이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윤미향 당선자는 “외교부에서 실제 일본과 합의 관련 내용을 통보받은 때는 2015년 12월27일 저녁이다. 일본 정부 책임 통감, 총리 사죄, 국고 거출 세 가지뿐”이라고 밝혔다. 정의연도 11일 기자회견에서 “정대협 법률자문위원회가 외교부 통보를 두고 (논의한 결과) 한-일 정부의 합의 발표 공식 기자회견 이후로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계를 2015년 12월28일로 돌리자. 기자는 당시 외교부 출입기자로 합의 발표 앞뒤 상황을 취재해 보도했다. 12월28일 낮 12~1시 외교부 1·2차관과 차관보가 세 곳에서 언론사 정치부장·논설위원들을 상대로 ‘12·28 합의’를 사전 설명했다.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은 “공식 발표 때까지 보도 유예(엠바고)”를 조건으로 ‘발표 요지’를 미리 알려줬다. ①“당시 군의 관여, 일본 정부 책임 통감” ②“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 ③“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 세 가지가 핵심이다. 윤 당선자와 정의연의 기자회견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윤병세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외교부 청사 3층 국제회의장에서 질문도 받지 않는 일방적 ‘기자회견’에서 합의 사항을 각자 발표하기 딱 2시간30분 전까지도 박근혜 정부는 ‘얻은 것’만 밝혔을 뿐, 일본에 한 ‘약속’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 누가 거짓말을 하나? 윤미향인가, 12·28 합의 주역들인가? 익명의 합의 주역은 윤 당선자가 주요 내용 설명을 듣고는 ‘고생했다’ ‘(결과가) 괜찮다’ ‘감사하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까지 보냈다고 언론에 주장했다.(<동아일보> <국민일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데, 설혹 그랬다 한들 ‘윤미향 말바꾸기’의 근거가 될 수 없다.
12·28 합의 발표로 상황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임 차관 등이 언론에 미리 밝히지 않은 ④“최종적·불가역적 해결” ⑤“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비판 자제” ⑥“한국 정부는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 노력”이라는 ‘숨겨진 비수’가 드러난 것이다. 정작 당혹감에 사로잡힌 이는 ‘익명의 12·28 합의 주역들’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인권·양심세력이다. 보수지 출입기자는 “이거 완전 제2의 을사늑약이네”라고 탄식하며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한 일본 최고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선생은 합의 발표 직후 “이번 합의는 일본이 너무 이겨 버렸다. 피해자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 정부의 외교 실패”라고 탄식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외교부에 구성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결과 보고서’(이하 ‘보고서’, 2017년 12월27일)에서 12·28 합의에 ‘비공개 부분’이 있음을 밝혔다. 굴욕적이다 싶게 내용이 고약하다.
태스크포스 보고서를 보면 이런 식이다. 일본 쪽이 “제3국 위안부 관련 상·비 설치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함”이라 하자, 한국 쪽은 “한국 정부로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라고 답한다. 일본 쪽이 “한국 정부는 앞으로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함”이라 하자, 한국 쪽은 직답을 피한 채 “공식 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임을 재차 확인함”이라 답한다. ‘성노예’ 표현 사용은커녕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외교부에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기도 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일본 쪽이 “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이전할지, 한국 정부의 계획을 묻고 싶음”이라고 하자, 한국 쪽은 공개 발표 ⑥을 재확인한다. 합의 발표 당일 기시다 외상이 일본 기자들한테 “(소녀상은) 적절히 이전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일본 쪽이 “정대협 등이 불만을 표명하면 한국 정부가 설득해주기 바람”이라 하자, 한국 쪽은 “설득을 위해 노력함”이라 답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병기-야치 쇼타로(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사이의 비공개 고위급 협의가 12·28 합의를 주도했으며, 합의 발표 여덟달 전인 2015년 4월11일 이 창구로 최종 합의와 유사한 ‘잠정합의’를 한 사실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른바 ‘윤미향의 말바꾸기’가 논란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12·28 합의 주역들의 굴욕적 대일 약속과 ‘발췌 통보’, 은폐가 문제다.
한국 사회가 난데없는 ‘윤미향 논란’으로 휘청이는 와중에도 13일 정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1439회 수요시위가 온라인 생중계 방식으로 열렸다. 1992년 1월8일 첫 집회 이후 한주도 거르지 않고 꼬박 29년째다. 12·28 합의 발표 당시 47명이던 생존 피해 할머니(정부 등록 기준)는 이제 18명뿐이다. 12·28 합의 발표 이듬해인 2016년 김숨이 장편소설 <한 명>을 발표했다. 평생을 자책하며 숨어 지내던 피해 할머니가 ‘공식 피해 생존자 두 명’ 중 한 명이 숨져 오직 ‘한 명’만이 세상에 남았다는 뉴스를 듣고는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며 세상 속으로 걸어나오는 이야기다. 피해 할머니 없는 세상, 한국 사회가 미구에 맞닥뜨릴 참혹한, 그러나 예견된 미래다. 한국 사회는 허깨비와 씨름할 시간이 없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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