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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파생상품 사용설명서] ‘널뛰기 유가’에 원유 ETF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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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초유의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하는 등 널뛰기를 하면서 원유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 투자자들이 좌불안석이다. 이미 레버리지 ETN(상장지수증권)은 금융당국이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ETN 못잖게 원유 ETF(상장지수펀드)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원유 ETF 역시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개인투자자는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와 비슷한 유형으로 ‘만만히’ 보고 달려든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매경이코노미

ETF는 ETN과 서로 닮았지만 다른 구석도 많다. 우선 ETF는 자산운용사가, ETN은 증권사가 상장한다. 유동성 측면에서는 ETN보다 ETF가 상대적 우위에 있다. ETN은 LP(유동성 공급자) 증권사가 1곳뿐이다. LP 증권사가 ETN 유동성 공급을 위해 호가를 내려면 발행 물량을 금융당국에 사전 신고하고 물량을 확보한 후 추가 상장해야 한다. 때문에 원유 레버리지 ETN처럼 ‘불개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유동성을 죄다 먹어버리면 거래에 차질이 빚어진다. 반면, ETF는 복수의 LP가 유동성 공급에 나선다. 또, 원유 레버리지 ETN처럼 LP가 제시한 매도 물량이 소진돼 잔고가 없어지더라도 거래가 중단될 가능성은 낮다. 이 경우 LP 증권사가 해당 ETF 운용사를 통해 추가 물량을 설정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무한대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다. 즉, ETF는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LP가 제출한 호가 물량이 모두 소진되더라도 지속적으로 동일 호가에 거래가 이뤄진다.

하지만 원유 ETF 역시 원유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한다는 점에서 ‘콘탱고’ ‘롤오버(선물 교체)’ ‘괴리율’ 등 낯선 금융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핵심은 롤오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차근차근 풀어보면 이렇다. 원유 ETF의 기초자산은 선물이고 선물은 매월 만기가 돌아온다.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가려면 만기가 도래하는 선물(근월물)을 만기가 먼 선물(원월물)로 교체해야 한다.

이때 만기가 가까운 달의 선물보다 만기가 먼 달의 선물 가격이 비싼 상태를 ‘콘탱고’라 부른다. 최근처럼 만기가 먼 선물 가격이 급등했을 경우 이를 투자용어로는 ‘슈퍼 콘탱고’라고 일컫는다. 워낙 유가가 낮다 보니 가까운 미래에 가격이 다시 오를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원유 실물을 보관할 창고가 없어 유조선이 바다를 떠도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빚어진 현상이다. 거꾸로 만기가 먼 달의 선물 가격이 가까운 달의 선물 가격보다 더 싸다면 이를 ‘백워데이션’이라고 부른다. 백워데이션은 아주 드문 경우다.

문제는 원유 ETF 역시 매월 기초자산인 선물의 만기를 연장할 때 롤오버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원유 선물 ETF의 롤오버 과정을 아주 쉽게 풀어보자. 계산 편의를 위해 몇 가지 가정을 더하자. 첫째, 롤오버는 한 번으로 끝낸다(실제는 수일에 걸쳐 진행). 둘째 5월물이 만기가 되기 전 6월물로 롤오버(1차)하고, 6월물이 만기 되기 전 7월물로 롤오버(2차)한다(실제로는 ETF마다 롤오버 방식 천차만별). 셋째, 수수료와 세금 등은 제외한다.

이런 가정을 전제로 5월물이 20달러일 때 원유 ETF를 매수했고 7월물이 30달러일 때 ETF를 매도한다고 치자. 일단 기초자산인 원유 선물 가격은 20달러에서 30달러로 50%(10달러) 올랐다. 하지만 ETF 투자자가 얻는 수익은 이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롤오버 때문이다.

최초 ETF 매입 시점에 20달러였던 5월물이 1차 롤오버 시점에 24달러로 올랐고 이를 팔아 6월물을 26달러에 샀다고 치자(1차 롤오버). 이어, 6월물을 28달러에 팔고 7월물을 31달러에 샀다(2차 롤오버). 뜯어보면 원유 선물 시세 상승분 10달러(20달러 → 30달러) 중 5달러(1차 롤오버 2달러+2차 롤오버 3달러)만큼은 수익과 상관이 없다.

또 롤오버할 때마다 선물 계약 보유 수량이 감소한다. 최초 20달러일 때 100을 투자했다면 수량은 5개다. 1차 롤오버 때 5월물을 24달러에 팔면 120달러가 된다. 이 돈으로 다시 6월물을 26달러에 사야 한다. 즉, 120달러로 6월물은 약 4.6개밖에 못 산다. 2차 롤오버 때는 수량이 더욱 줄어든다. 이때 6월물 4.6개를 28달러에 팔면 약 129달러가 된다. 이 돈으로 다시 7월물을 31달러에 사야 한다. 결국 129달러로 7월물을 4.16개밖에 살 수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7월물을 32달러에 4.16개 팔면 최종 수익금은 133.12달러다. 요약하자면 원유 선물 시세만으로 본 단순 예상 수익률(20달러 → 30달러)은 50%였지만 롤오버 비용을 고려한 실제 수익률은 33%(100달러 → 133달러)에 그쳤다.

실제 원유 ETF의 괴리율은 점차 벌어지는 추세다. 원유 ETF의 괴리율은 각종 수수료와 롤오버 비용 등을 제외한 순자산가치(NAV)와 현재 거래 가격 간 차이를 보여준다. 국제 선물시장에서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직후였던 지난 4월 22일 ‘KODEX WTI원유선물(H)’의 괴리율은 무려 20%에 달했다. 원유 ETF 시장 가격이 본질가치보다 20% 정도 거품이 껴 있다는 의미다. 파생시장 관계자는 “원유 ETF에도 롤오버 비용이 발생하고 괴리율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꼭 유념해야 한다”며 “롤오버를 비롯한 제반 비용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원유 ETF는 장기 투자하기에도 적합하지 않은 상품”이라고 경고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7호 (2020.05.06~05.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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