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한 주유소에서 소비자가 기름을 주유하는 모습. 국내 소비자들은 국제 유가 하락에 비해 더디게 떨어지는 국내 기름값에 답답해한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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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유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20일(현지시각)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55.9달러 하락한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유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5월에 받기로 돼 있던 원유를 돈을 줄 테니 제발 갖고 가 달라고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6월 인도분 WTI 가격은 28일 12.34달러. 유가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간 국내 소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국제유가가 많이 떨어졌다는데 주유소의 휘발유·경유 판매 가격은 그만큼 내려가지 않았으니까요. 유가가 치솟을 때는 주유소 기름값도 금방 올라갔던 거 같은데, 유가가 떨어질 때는 기름값 하락 속도가 더디다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왜 그런 걸까요. 다섯 개 질문으로 짚어봤습니다.
◇Q1. ‘마이너스’ 원유 시대, 국내엔 영향 없나요
WTI는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 중동산 두바이유와 함께 국제 유가의 표준이 되는 원유입니다. 지난 20일 WTI가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수입 원유의 대부분은 중동산입니다. 중동산의 대표 유종인 두바이유의 경우, 지난 22일 배럴당 13.52달러까지 떨어졌고 28일에는 16.63달러로 올랐습니다. 중동산 원유 가격은 WTI만큼 많이 떨어지지는 않은 것입니다.
국내 정유업체가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하는 데에는 40일 정도 걸립니다. 현재는 유가가 내린 상태지만 정유업체가 처음 원유 계약을 맺었을 때는 지금보다 가격이 높은 상태였습니다. 정유업체들은 “처음 원유 구매 계약을 맺었을 당시 산정된 원가가 있기 때문에 유가가 떨어졌다고 국내에서 파는 휘발유·경유 등 제품 가격을 실시간으로 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원유보다 국내 기름값에 더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건 국제 석유 제품 가격입니다. 국내 기름값은 원래 원유 가격에 연동했지만, 2001년부터 국제 석유 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되고 있습니다. 원유와 휘발유·경유 같은 석유제품 시장은 분리돼 있어 자칫 가격 왜곡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죠. 원유 가격이 하락폭이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에 바로 반영되기 어려운 셈입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석유 수요도 급격히 위축됐다. 수요가 줄면서 세계 곳곳에선 재고 저장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미국 쿠싱 지역의 원유 창고의 모습.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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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왜 기름값은 유가가 떨어지는 만큼 안 내리죠
국내 기름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기 어려운 건 사실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입니다. 국내 휘발유를 기준으로 L당 교통세 529원, 교육세 79.35원(교통세의 15%), 주행세 137.54원(교통세의 26%) 등 유류세 745.89원이 붙습니다. 주유소 판매가격의 10%도 부가세로 더해집니다. 휘발유 1L를 구입하려면 세금으로만 적어도 820원(745.89원+74.59원)을 지급해야 하는 겁니다.
여기에 원가(원유 가격)와 수송비, 정유사·주유소 마진 등을 더해 최종 휘발유 판매가가 결정됩니다. 휘발유 가격이 L당 1300원일 경우, 세금만 875.89원(전체의 67%)을 차지합니다. 결국 원유 가격이 아무리 폭락해도 높은 세금 비중으로 인해 L 당 820원 이하의 휘발유는 등장할 수 없는 겁니다.
◇Q3. 기름값, 떨어질 땐 천천히 오를 땐 재빨리 움직여요
가격에 민감한 일반 소비자들은 ‘기름값이 오를 땐 재빨리 오르고, 내릴 땐 굼벵이처럼 내린다’고 불평합니다.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닙니다. 세금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최근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내려가는 속도가 더딘 편입니다. 지난 1월 첫째 주부터 4월 넷째 주까지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거래된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72.72달러에서 17.77달러로 약 75%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 가격은 L당 16%(1558.67원→1301.78원) 하락에 그쳤죠. 세금 부분을 제외하고 계산해도 35% 떨어진 수준입니다.
에너지·석유시장 감시단이 지난해 12월 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1월 국제휘발유 가격은 L당 31.59원(6.3%) 오른 데 비해 국내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의 공장도 가격은 L당 47.20원(8.5%) 인상됐습니다. 국제가 대비 L당 15.61원 더 많이 올린 것입니다.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가 L당 1298원, 경유가 L당 1118원으로 게시돼 있다. 28일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1274.4원이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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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왜 주유소마다 판매 가격이 다른 거죠
29일 기준, 서울 중구의 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L당 2069원입니다. 반면 서울 강서구의 한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는 L당 1174원에 불과합니다. 같은 서울 지역임에도 휘발유 가격이 900원 가까이 차이 나는 겁니다.
주유소마다 가격 편차가 있는 생기는 건 여러 이유 때문입니다. 주유소의 땅값과 임대료, 인건비, 서비스 방식 등 투입된 비용이 저마다 다르죠. 예컨대 주유원이 없는 셀프 주유소는 인건비가 들지 않아 상대적으로 기름값이 저렴한 편입니다. 유동 인구가 많고 도심에 가까운 주유소일수록 높은 임대료 때문에 기름값도 비쌀 수밖에 없죠.
통상 주유소 가격 경쟁이 덜한 지역일수록 기름값이 비쌉니다. 서울 용산구가 그런 예입니다. 23만명의 인구가 있는 용산구엔 주유소가 14개밖에 없습니다. 옆집 주유소와 굳이 가격 경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용산구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이 전반적으로 비싼 편입니다.
◇Q5. 앞으로 기름값은 얼마나 더 떨어질까요
일반적으로 유가가 떨어지면 수요가 늘어나 다시 가격이 오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구·물류 이동이 급감하면서 석유 제품 수요가 크게 위축된 상황입니다. 저(低)유가 기조가 지속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번 달 들어 세계적으로 석유 수요가 하루 3000만 배럴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는 하루 세계 석유 수요의 30%에 달하는 막대한 양입니다. 국내 기름값도 당분간 더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폭락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순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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