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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로봇이 온다

바이러스 경보기·생필품 배송로봇…"기초기술은 이미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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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운스백 코리아 ⑦ / 코로나 대응 중장기 기술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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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2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 놓인 작은 경보기가 이상 징후를 감지했다. 경보기는 교실 내 공기를 흡입한 뒤 레이저를 쏴 비말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바이러스를 찾아낸다. 미세먼지나 건강에 무해한 미생물 데이터는 걸러낸다. 경보기 분석 결과 기존에 알려진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었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중심으로 자가격리자가 다수 발생했다. 2주간 외출이 금지되는 자가격리자에게 정부가 로봇을 이용해 생필품을 전달한다. 사족보행 로봇은 아파트나 골목길에서 격리자에게 줄 물품을 실은 뒤 자율주행 기술을 이용해 빠르게 생필품을 보급한다. 물품 배달보다 시급한 일에 인력을 배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인 만큼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사스와 코로나19처럼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토대로 신약 후보물질을 만들어냈고 빠르게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KAIST가 제안한 과학기술 뉴딜 정책에는 단기간의 연구로 상용화를 기대하기에 난도가 높은 과제도 여럿 있다. 향후 5년이 아니라 10년 뒤에도 구현되지 못할 수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과학기술계는 향후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 잦아질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장기적인 연구개발(R&D)과 함께 산업계, 학계, 정부출연연구소, 병원 등 다양한 연구 주체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백신·치료제 개발은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 만큼 최소 1~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신약 후보물질들이 차질 없이 계획대로 진행됐을 때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와 사스 바이러스 연구를 토대로 범용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확인했다. 이처럼 꾸준한 R&D가 이어져야만 치료제나 백신 개발을 위한 단서가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만 반짝 R&D 비용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KAIST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바이러스 연구에서는 산학연을 비롯해 병원과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병원과 협업해 코로나19 확진자의 혈액을 이용한 면역반응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확진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면역 과다 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백신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목숨이 위태로운 중증 환자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코로나19가 가을·겨울에 재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10월까지 후보물질을 찾아 임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백신과 치료제 등 신약 개발 측면에서 우리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유럽은 10여 년 전부터 산학연과 병원이 함께 협력하는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세계 최대 민관 신약 개발 협력체인 유럽 'IMI(Innovative Medicines Initiative)'는 지난달 로슈, 노바티스,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 13개가 참여하는 코로나19 치료제와 진단기술 개발을 위한 '패스트트랙' 연구 공모를 시작했다. IMI는 2008년부터 140여 개 산학연 협력을 기반으로 신약 R&D 프로젝트를 운영해온 노하우를 살려 신속하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기존 IMI에 참여한 글로벌 제약사 및 공공연구기관이 보유한 항바이러스제 30여 개를 토대로 코로나19에 대한 효과를 확인하고 과거 수많은 임상을 진행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병원과 협업하며 최대한 빨리 임상시험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한국은 백신·치료제 개발과 관련한 경험이 부족할 뿐 아니라 국내 연구기관이 보유한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정보 접근·공유 체계가 미비하다. 지난 수년간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제약사, 대학, 정부출연연구소 간 협력이 진행됐지만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업성이 떨어지는 감염병은 백신을 제외하면 국내에는 실제 개발 전문 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할 뿐 아니라 공공 분야 연구비가 부족한 점,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 경험이 부족한 점도 한계로 꼽힌다. 이 같은 한계를 빠르게 뛰어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와 의료계의 협력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돼야 한다. 신 교수는 "병원과 협력 연구를 통해 코로나19에 대해 세밀하게 알 수 있게 됐고, 과기계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만큼 속도전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며 "향후 병원과 과기계 간 공동연구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족보행 로봇처럼 코로나19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술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적극 활용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자가격리자가 수만 명으로 늘어나자 이들에게 생필품을 배달하는 일에 많은 인력이 배치됐다. 명현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과학기술 뉴딜 정책 과제로 '자가격리자를 위한 물품 배송 로봇 시스템 기술 연구'를 제안했다. 이미 확보돼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사족보행 로봇과 융합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치타 로봇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박해원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도 과제에 참여하기로 했다. 명 교수는 "배달하지 않을 때는 방역 일도 할 수 있다"며 "기초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한 만큼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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