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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스위스 자영업자 "코로나 대출 2분 걸렸어요"...한국은 "새벽 2시에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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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와 한국, 40대 자영업자 인터뷰

한국은 '무늬만 온라인 예약'..."전날부터 줄 선다"

스위스는 온라인으로 일사천리 "속도가 생명이다"

“코로나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은 갑자기 폭풍을 만난 기분입니다. 이 폭풍을 피할 대피소가 ‘긴급 대출’이라면,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스위스 자영업자 마티아스 크나우스씨)
“온라인 예약 하라고 해서 시도했는데 1분도 안돼 마감이라 포기했습니다. 새벽 2시에 줄이나 서려고 갔더니 전날 오후 5시부터 줄 서신 분들이 이미 길에서 떨고 계시더군요.” (부산 학원장 P씨)

스위스 취리히에서 IT(정보기술) 관련 작은 가게를 하는 마티아스 크나우어 사장과 한국 부산에서 학원을 하는 P씨는 모두 40대 소상공인이다. 이 둘은 공통점이 또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사업에 직격탄을 맞아 정부가 준비한 코로나 긴급 대출을 받으려고 나섰다. 그런데 결과가 정반대다. 크나우어씨는 5분 만에 신청을 완료하고 하루 만에 50만 스위스프랑(약 6억3000만원)을 무이자로 대출받았다. P씨는 새벽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센터를 찾았다가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포기했다. 온라인으로 방문 예약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접수가 개시되자마자 신청이 마감되기 일쑤다.

두 나라는 모두 지난달에 소상공인 코로나 긴급 대출을 출시했다. 스위스 소상공인들은 신속한 대출에 한숨을 돌린 반면 한국 소상공인들은 대출금이 곧 소진된다는 걱정 속에 혹시라도 기회를 놓칠까 밤샘 줄 서기를 불사하고 있다. 무슨 차이일까. 코로나 긴급 대출에 도전한 스위스와 한국 40대 자영업자를 인터뷰해, 그 목소리를 전한다.

◇스위스 자영업자 크나우어 “2분 만에 온라인 접수, 하루 후 입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폭풍처럼 경제를 덮치자 당장 직원 월급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정부가 소상공인 대출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난 3일 신청에 착수했습니다. 주거래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에 전화했더니 홈페이지에 온라인 신청 코너가 있다면서 거기에 서류를 접수하라고 하더군요.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한 장짜리 서류를 출력해서 신상 등을 적은 다음 스캔해서 올리니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아니 이렇게 간단해도 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더 놀란 것은 대출 승인 속도였습니다. 30분 만에 대출 승인이 되었다는 문자가 왔고 다음 은행 영업일인 월요일에 50만 스위스프랑이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폭풍에 맞설 임시 대피소 하나를 지을 수 있겠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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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우스 크나우스씨.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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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전년도 매출의 10%까지 대출을 해줍니다. 우리 정부와 은행이라고 엄청난 첨단 기술이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다만 주거래은행을 통했기 때문에 매출 증빙 등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고 대출 상환이 되지 않으면 정부가 이를 책임지겠다고 확실히 해두었기 때문에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정부의 원칙이 빠른 대출 집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한 장짜리 대출 서류는 대부분 ‘나는 자영업자다’, ‘나는 코로나 타격을 받았다’, ‘나는 중복 대출을 받지 않았다’ 등에 ‘셀프 체크’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까다로운 심사를 하느라고 모든 대출이 지연되는 부작용을 겪느니, 허위로 기재한 대출자가 있으면 사후 검사를 통해 적발하고 페널티를 주기로 했다는 뉴스를 읽었습니다. 일단은 소상공인에게 돈을 지급해 ‘급한 불’부터 꺼주자는 정부의 철학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처럼 일찌감치 센터를 찾아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라면요? 저라도 새벽이건 전날 밤이건 줄을 섰을 겁니다. 그만큼 자영업자는 절박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네요.

◇부산 학원장 P씨 “1000만원 빌리려고 길에서 밤을 새다니…”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학원 원장입니다. 당장 임차료부터 급한 상황인지라 소상공인 대출을 받으려 나섰지요. 홈페이지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방문 전에 ‘온라인 예약 필수’라고 해서 안내에 따라 시도했는데 그건 뭐, 예약 시작 즉시 마감이더군요. 직접 가서 줄을 서기로 했습니다. 지난 7일 이야기입니다. 오전 2시쯤에 센터에 갔어요. 나름 큰맘 먹고 일찍 간 거죠. 그런데 그 쌀쌀한 봄밤에 사람들이 이미 건물 밖까지 줄을 서 있더군요. 그분들은 저한테 “오늘 정원 이미 다 찼으니까 서 봤자 소용없다”고 손을 휘휘 저었습니다. 하루에 수십 명 정도가 고작인데 이미 줄 선 사람만으로도 선착순 마감이라고 말이죠.

조선일보

대구 중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남부센터 앞에 지난 1일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긴급 대출을 받으려는 소상공인들이 대기하는 모습. 지난달 정부 주도로 출시한 코로나 긴급 대출이 곧 소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절차를 간소화하고 온라인 예약제를 도입하는 등 후속 조치에도 소상공인들은 대출 신청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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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도대체 몇 시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전날 오후 5시에 오셨대요. 믿기지 않아서 다음 날 저녁 먹고 센터 앞을 지나가 보았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닫힌 철문 앞엔 벌써 줄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줄 서서 대출받기’ 계획은 접었습니다. 벌벌 떨면서 밤새우는 분들을 보니 저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단은 온라인 예약이나 계속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PC방 랜선이 빨라서 예약이 잘된다는 얘기가 있던데, 정말입니까?

저는 (코로나 사태 이후) 두 달째 정부 말 잘 듣고 학원 수업 안 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돈을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이자를 안 받고 빌려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이 전쟁통입니까? 1000만원 빌려 쓰려고 자영업자들이 길바닥에서 밤까지 새우는 현실이 너무 서글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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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와 한국의 소상공인 코로나 긴급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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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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