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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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야기하는 분을 요즘에 별로 못 봤지만, 어느 정치인의 사연만큼은 한동안 입길에 올랐다. 공천에 탈락하자 기독교 정당으로 옮겨 공천을 받았다. 그런데 이튿날 이분이 ‘정치인 불자 모임’에서 활동한 사실이 밝혀져 소동이 일어났다.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은 교인이라는 사실 또한 알려졌다. 이분은 세 종교의 신자였던 것이다. 그래도 또 다른 당을 찾아가 끝내 공천을 받았다고 하니 나름 복 받은 분이다. 여느 사람의 세 배나 되는 신앙심에 신도 무심하지 않으셨나 보다. 세 종교 가운데 어느 신이 돌봐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왜 나는 지옥 칼럼에서 하는가. 오해 마시길. 앞서 언급한 정치인이 지옥에 갈 것 같다는 뜻이 아니니. 오히려 반대다. 이번 너저분한 선거판에 눈살 찌푸린 시민들을 활짝 웃게 만들어준 정치인이 이분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제쳐놓고라도, 이분은 천국에 갈 가능성이 크다. 유명한 ‘도박사의 논증’에 따르면 그렇다.
수학자로 유명한 블레즈 파스칼은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냐고 묻지 말고 일단 신을 믿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길거리 전도는 파스칼이 활동하던 17세기에도 낡은 방법이었다. 대신 파스칼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수학적 논증을 이용했다. 신은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확률은 모른다. 대신 우리는 신을 믿는 일과 신을 믿지 않는 일, 각각의 ‘기대값’을 계산할 수 있다. ① 신을 믿는 경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대신 신이 존재한다면 극락이나 천국에 가게 될 테니 이익을 무한히 본다. 반면 ② 신을 믿지 않는 경우.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익도 손해도 크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신이 존재한다면 지옥에 떨어지는 무한한 손해를 본다. 그러므로 신이 존재할 확률이 어떠하든지, 신을 믿는 쪽이 믿지 않는 쪽보다 기대값이 크다. 무한히 크다. 그러니 제정신 박힌 ‘도박사’라면 신을 믿는 쪽에 내기를 걸리라는 것이 파스칼의 주장이다.
그럴싸하다. 고리타분한 교리 대신 ‘도박사’가 등장하는 점도 ‘쿨’해 보인다. 그런데 찜찜하다. 파스칼의 논증에 대해 여러 반박이 있다. 대부분은 원래 논증만큼이나 긴가민가하지만, 다음 반박 하나는 머리에 쏙 들어온다. “그래, 파스칼의 말이 다 맞다 치자. 종교를 가지는 쪽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렇다면 종교를 하나만 가지는 쪽보다 동시에 여럿 가지는 쪽이 천국을 배당받을 확률을 높이지 않을까?” 정곡을 찌른다.
물론 이 반박에는 전제가 있다. “아무리 천국에 가고 싶대도 동시에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이 설마 있겠느냐, 그럴 사람은 없다”는 상식이 그 전제다. 그런데 이 상식이 뒤집힐 줄이야. 세 종교를 동시에 믿는 정치인 이야기에 내가 눈이 번쩍 뜨인 이유다. 이분이야말로 천국에 갈 확률이 높지 않은가. 이분 하나만의 사연이 아니라고 한다. 정치평론가 김민하가 방송에서 꼬집었다. “정치인은 불, 개, 천을 기본으로 믿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선거 때는 모든 종교 시설에 정치인이 다 간다.” 파스칼의 논증에 따르면 천국 역시 높으신 분들 차지인가 보다. 왠지 그럴 것 같더라. 우리는 지옥에 대해서나 더 알아보자.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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