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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조용헌 살롱] [1237] 전염병과 백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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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전염병이 창궐하니까 체크되는 부분이 보인다. ‘내가 공부가 되었나 안 되었나’다. 죽음을 담담한 상태로 받아들이면 공부가 된 것이고, 담담하지 못하면 공부가 안 된 것이다. 그동안 만 권의 책을 읽고 수만 리를 여행해 보았지만 공부가 안 된 것 같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수자상(壽者相)을 뗀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수자상을 떼어 내는 방법 중 하나는 백골관(白骨觀)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백골에 대한 집중적인 명상이다. 백골관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시체 옆에 앉아 있으면서 그 시체가 썩어가며 백골로 변하는 모습을 몇 달이고 지켜보는 방법이다. 인도에서는 시체를 장작불로 태우는 화장도 있었지만, 화장을 하지 않고 시체를 그냥 숲속에다 버리는 장례법도 있었다. 장작 값도 비싸다. 시체를 숲속에다 던져 놓으면 동물들이 그 살을 뜯어 먹으며 배를 채울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육신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지게 된다.

백골관은 시체가 사대(四大·지수화풍)로 흩어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비싼 인삼·녹용 먹어 가며 보양한 육신이 이렇게 뼈만 남긴 채 썩어가는구나! 돈 주고 피부 마사지 받느라 애썼는데 이렇게 뼈만 남았구나! 이 육신 유지한다고 살면서 얼마나 노심초사했단 말인가! 좌파와 우파를 가르며 그렇게 성질내고 핏대를 올리던 이 육신이 썩어 버렸구나! 몇 달간 자리 깔고 시체 옆에 앉아서 살 썩는 냄새, 살을 파먹는 벌레들을 지켜보는 백골관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공부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경전 공부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육신이 썩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아 봐야만 확실하게 육신의 무상함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조장(鳥葬)을 하였다. 시체를 칼과 도끼로 토막 내서 독수리 밥으로 주는 장례법이다. 조장도 과격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백골관의 일종이다. 내가 아는 외과 의사도 몇 년 전에 동티베트에서 젊은 여자의 시신을 토막 내서 조장하는 광경을 보았는데, 그 뒤로 한 3일간은 밥도 잘 안 먹히고 정신이 멍해지더라는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이보다 완화된 백골관이 자신의 엄지발가락부터 백골로 변하는 모습을 스스로 상상해 보는 방법이다. 그러고는 점차 자기 몸 전체가 백골로 변해 가는 모습을 관하는 것이다. 전염병의 창궐이 주는 교훈도 있다. 죽음에 대한 명상이고, 인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

[조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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