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보 서희환 `서화동원`으로 서예와 그림의 근원은 같다는 뜻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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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동원(書畵同源)'은 글씨와 그림의 근원은 같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이 붓 끝에 담겨 점, 선, 면을 이뤄나가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51년 역사상 첫 서예전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의 이유이기도 하다. 덕수궁관 1층 전시장 도입부에 내건 평보 서희환 1990년 서예 작품 '서화동원'이 주변에 전시된 현대미술 작품의 뿌리가 서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 이응노(1904~1989), 남관(1911~1990), 김환기(1913~1974), 김기창(1914~2001), 서세옥(91), 물방울 작가 김창열(91), 오수환(74), 추상조각 거장인 김종영(1915~1982)과 최만린(85) 등의 작품에서 서예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파리에서 활동한 이응노는 서예 형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문자추상 작품으로 동양인의 정체성을 지켰다. 남관도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겪은 비극적 체험을 상형문자와 한글 자음 모음과 비슷한 조형언어로 파리 미술계에 존재감을 보여줬다.
김환기가 달항아리와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그린 1954년작 '항아리와 시'는 문인화의 시서화 일치 사상을 수묵이 아닌 유채로 표현한 작품이다.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서 문인화를 현대적으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한국화가 김기창의 1980년작인 '문자도'는 진한 먹으로 예서필의 두툼한 획들을 화면 오른쪽에 짜임새있게 구성했다. 한국화가 서세옥의 1970년대 후반 '인간' 시리즈는 사람 인(人) 형태가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추상화다.
오수환 `Variation` |
어린 시절 조부로부터 한자와 서예를 배운 김창열은 1980년대부터 천자문을 그리며 작품의 폭을 확장시켰다. 천자문은 고향, 물방울은 생명을 상징한다. 오수환은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서예 기법으로 명상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가로 획과 세로 획, 그 사이를 오가는 사선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김종영은 존경하는 추사 김정희(1786~1856) 글씨 구조의 아름다움을 기하학적 입방체로 조각했다. 최만린은 1960년대 중반부터 천(天)·지(地)·현(玄)·황(黃)을 조형화한 문자추상 조각을 선보였다.
서예에서 영감을 받은 미술가들이 서막을 열었다면, 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 12명 작품은 이번 전시의 중심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등 격동기에도 한 획을 그으면서 자신 만의 예술세계를 확립한 인물들이다.
소전 손재형(1903~1981)은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서도(書道) 대신 서예(書藝)를 주창해 널리 쓰이게 했다. 한글과 한문서예에 두루 능했고, 다양한 조형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소전체'를 탄생시킨다. 특히 추사의 걸작 '세한도'를 소장했던 후지츠카 치카시 경성제국대학 교수(1879~1948)를 찾아가 여러 번 부탁 끝에 마침내 작품을 인도받아 귀국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올해 탄생100주년을 맞은 일중 김충현(1921~2006)은 한글고체와 한글흘림, 전서, 예서, 해서, 행서 등 6종 서체를 한 공간에 조화시켰다. 석봉 고봉주(1906~1993)의 전각은 중국 금석문과 청나라 명가들의 각풍을 연구해 일본과 한국 전각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소암 현충화 취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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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암 현중화(1907~1997)가 술에 취해 서귀포 음식점 국일관 벽에 쓴 '취시선(醉是僊)'은 서예를 넘어 추상화 같다. 글자 속에 한 마리 학이 춤을 추는 듯 가늘고 긴 것 같으면서도 그 강인한 힘이 마치 전통무예 택견을 보는 듯하다.
강암 송성용(1913~1999)은 일제의 강압에도 단발령과 창씨개명을 거부했던 부친의 뜻을 이어 평생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고 다녔다. 맑고 우직한 대나무 줄기가 뻗어있는 그의 '석죽도(石竹圖)'에는 선비의 강인한 기상이 서려있다.
하석 박원규의 공정 |
강암 송성용 석죽도-풍지로엽무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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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교육받은 2세대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 서단의 실험성과 확장성도 살핀다. 하석 박원규(73)의 '공정(公正)'은 청동 제기에 새겨진 정(正)을 재해석해 서예의 회화적 요소를 극대화시켰다.
현대 디자인 서예까지 100여년 진화 과정을 아우른 작품 300여점, 자료 70여점을 펼친 전시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만 감상할 수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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