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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몰카 보던 그들, 이젠 여중생 몸에 '노예'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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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 이후 음란물과 20년 전쟁… 이름·채널 바꿔 더 악랄하게 유통]

텔레그램 성착취 n번방·박사방, 나체사진 볼모로 영상찍게 만들어

경찰, 논란 커진 뒤에야 뒷북 수사… 단순 시청자는 처벌 규정도 없어

여성을 상대로 한 성(性) 착취 장면을 촬영하고 이를 텔레그램으로 유포한 '박사방 사건'에 대해, 경찰은 주범과 공범 외에도 해당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돈을 내고 불법 음란물을 내려받은 회원들까지 모두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사방 사건은 운영자 조주빈(25)과 공범들이 인터넷에서 만난 여성의 약점을 잡은 뒤 성폭행을 비롯한 각종 성적인 학대를 가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 돈을 낸 회원들에게 제공한 사건이다. 23일까지 밝혀진 피해자는 74명. 이 가운데 16명은 중학생 등 미성년자였다.

조씨 등은 모르는 여성에게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이나 텔레그램을 이용해 접근, '나체 사진을 보내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경우 서로의 전화번호나 실명(實名) 등 신상 정보가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 여성이 제안에 응했다. 일단 사진을 받은 다음엔 돌변했다. 매수한 사회복무요원 등을 통해 정부 전산망에 접속, 여성의 가족관계와 주소 등 개인 정보를 입수한 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피해자들은 '노예'가 됐다.

운영자들은 피해 여성들에게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을 정도의 난잡한 가학 행위를 강요했다. '가위로 신체 일부를 잘라라' 등의 지시를 내리고, '노예' '박사' 등의 단어를 칼로 스스로의 몸에 새기게 했다. 이 같은 장면을 피해자가 '셀카'로 찍도록 했다. 이 영상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돈을 받고 팔았다.

국내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성범죄는 점점 악랄해지고 있다. 단순히 성관계 도촬(盜撮) 영상을 공유하던 수준을 넘어, 이제는 아동·청소년을 노예화해 심신을 파괴하는 수준으로 치닫는 것이다.

인터넷 성범죄의 시초격인 사이트는 1999년 5월 개설된 소라넷이다. 몰래 카메라 영상과 아동 포르노물이 공유됐다. 2015년엔 소라넷에 자신의 동영상이 올라온 것을 확인한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는 2006년 국내 최초로 이 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차단했다. 그러자 운영진은 미국·유럽 등지로 사이트 운영 서버를 옮겨다니며 운영을 이어 갔다. 2016년 경찰 수사 끝에 소라넷 운영진이 검거되면서 사이트가 폐쇄됐다. 주범 격인 송모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2013년 개설된 '에이브이스누프'(AVSNOOP)라는 사이트가 소라넷의 빈자리를 꿰찼다. 에이브이스누프는 '리벤지 포르노'의 주요 유통 창구였다. 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사람과의 성관계 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는 행위다. 2017년 4월 이 사이트가 폐쇄되기 직전까지 약 46만개의 불법 음란물이 게시됐는데, 대부분 리벤지 포르노나 아동·청소년 등장 불법 음란물이었다. 에이브이스누프는 2017년 4월 문을 닫았다. 사이트 운영자 안모(36)씨는 3년간 17억원을 벌었지만,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성범죄자들은 보안성이 뛰어난 소셜미디어인 텔레그램으로 유통 경로를 갈아탔다. 그 시초가 된 것이 인터넷에서 '갓갓'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성범죄자가 만든 'n번방'이었다. 불법 음란물이 공유되는 채팅방의 이름이 1번부터 n번까지 각각 번호로 붙여져 'n번방'이라고 불린다. 19일 구속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모씨와 공범들 역시 'n번방' 수십 개를 운영했다. 오는 4월엔 '와치맨'이라는 닉네임으로 또다른 n번방을 운영한 혐의를 받는 전모(38)씨가 재판을 받는다.

현행법은 조씨처럼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제작·유포하면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이를 소지만 해도 1년 이하의 징역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단순 시청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반면 미국에선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시청만 해도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4~13일 1심 판사들을 대상으로 현재의 형량 기준이 적절한지에 대해 설문 조사를 벌였다.





[이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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