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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악마를 보았다'...n번방의 박사 조주빈, 그리고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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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디지털 범죄, 메신저의 존재이유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74명의 여성을 유인 및 협박, 돈을 받고 음란물을 공유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최초 갓갓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신원불상자가 시작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악질적으로 여성을 협박해 부당한 이득을 취한 통칭 박사, 25세 조주빈은 23일 오후 SBS 등 언론을 통해 실명과 얼굴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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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나

박사, 조주빈은 수도권의 한 대학을 졸업한 25세 남성이며 대학 재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 지인들에게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로만 알려졌으나 그는 2018년 12월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통칭 박사방을 운영하며 여성들에게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피해자들을 유인했고, 얼굴이 나오는 나체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도록 협박해 이를 n번방의 유료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1만명 수준으로 추산되는 n번방의 시청자, 즉 사실상의 공범들은 박사가 공유하는 불법적인 영상을 태연하게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텔레그램을 통한 여성 유인 및 협박, 성착취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회자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들의 연대조직도 활동하고 있으며 경찰 수사도 진행되는 중이다. 그러나 박사 조주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심지어 체포직전 언론과 수사당국의 압박이 심해지자 범죄를 부정하고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는 한편 취재하는 기자들의 신상정보를 회원들과 공유하는 행위도 서슴치않았다. 나아가 본인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성(性) 활동가로 포장하는 이상행동까지 보였지만 막상 체포 당시에는 가벼운 자해에 그쳤을 뿐 아니라 체포된 후에도 코로나19 환자로 행세하는 등 바닥을 보여주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미성년자까지 돈벌이의 도구로 활용하는 모습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당장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박사 조주빈은 물론 n번방에서 사실상 공범으로 활동한 회원들도 모두 처벌하고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나섰다. 문 대통령은 23일 "경찰은 이 사건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고. 특히 아동ㆍ청소년들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하게 다뤄달라"면서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 법안도 발의된다. 민주당 백혜련, 박경미 의원 등 여성 의원들과 예비후보들은 23일 "사법 당국의 엄정한 처벌을 촉구한다"면서 성적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형법상 특수협박죄로 처벌하게 하는 등을 골자로 하는 n번방 사건 재발금지 3법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즉각 법무부와 경찰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 여성가족부와 시민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어 입법에 따른 강력한 대처를 준비하는 중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정의당도 속속 관련 입법을 추진하겠다 밝혔다.

수사당국도 n번방 사태가 전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하자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외국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한 범죄가 발생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공조에 나서는 한편 FBI에도 협력을 요청할 계획이다. 나아가 최초 n번방을 시작했으나 최근 잠적한 갓갓을 빠르게 검거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이미 갓갓에 이어 n번방을 이어받은 소위 왓치맨이 지난해 말 검거된 상태에서, 현재 n번방과 관련이 있는 운영자들은 대부분 검거된 상황이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수사력을 총동원해 갓갓은 물론 n번방에서 활동한 회원들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최대 1만명(16만명이라는 추정도 나오지만 이는 단순합산) 수준으로 추정되는 n번방 회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최근 압박해오는 수사당국의 칼날에 바짝 엎드린 정황도 엿보인다.

이들은 법률 관련 조언을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네이버 지식인 등에서 우연히 호기심으로 n번방 구경을 했는데 이런 것도 처벌될 수 있느냐는 글을 다수 남기는 중이다. 그러나 n번방에 입장하려면 최대 150만원 수준의 암호화폐를 제공하는 한편 신분증 인증까지 해야하는 번거러움을 감수해야 한다. 즉 회원이 되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들이 우연히 회원이 되었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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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정체는?

n번방의 잔혹한 범죄가 온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은 박사에 이어 갓갓의 체포여부와,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텔레그램의 협조 여부에 집중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경찰은 처음으로 n번방을 만든 갓갓의 IP주소는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텔레그램과의 공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텔레그램의 역사와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텔레그램은 2013년 8월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메신저며 러시아의 괴짜 개발자인 파벨 두로프가 만들었다.

파벨 두로프는 1984년 10월 1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으나 언어학자로 일하는 아버지 발레리를 따라 건너간 이탈리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2001년 다시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으나 ICT 기술에 소질을 보였다. 수학자이자 프로그램 개발자인 형 니콜라이와 함께 2006년 9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브이콘탁테(VKontakte/VK)’의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다.

VK는 이후 러시아의 페이스북이라 불리며 초대형 플랫폼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파벨 두로프의 순탄한 일생은 2011년 러시아 정부와 각을 세우며 꼬이기 시작한다.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 직후 러시아의 대통령인 푸틴을 규탄하는 ‘반푸틴 시위’가 급속도로 확장되며 VK와 러시아 정부의 갈등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VK에 시위자들의 온라인 정보를 요청하지만, 파벨 두로프는 이를 거절한다.

시간이 흘러 2014년 우크라니아 사태가 터지며 러시아 정부가 또 한번 VK에 정보제공을 요청하지만 파벨 두로프는 역시 거절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러시아 정부가 보낸 협박 공문을 VK 페이지에 전격 공개하는 한편 모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우여곡절끝에 탄생한 것이 최강의 암호 인프라를 가졌다고 알려진 텔레그램이다. 텔레그램은 대화내용을 암호화시켜 제3자가 모니터링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만약 비밀 대화방을 설정하면 서버에는 기록조차 되지 않는다.

이러한 강력한 암호 인프라를 인정받아 국내에서는 한 때 텔레그램 열풍이 불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으로 텔레그램이 국내에서 위력을 떨쳤던 시기는 2014년 카카오톡 감청논란이 불거졌을 때였다. 당시 카카오톡이 이용자들의 정보를 수사당국에 제공한다는 점이 알려지며 많은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떠나 텔레그램으로 이동했으며, 그 여파로 텔레그램이 잠깐이지만 국내 모바일 메신저 1위에 오르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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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텔레그램은 보안 인프라를 위해 만들어진 모바일 메신저며, 당연히 외부에서 확인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텔레그램은 테러 및 범법행위 가능성이 있다면 러시아를 제외한 세계 각 국과 공조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텔레그램의 협조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이유로 독일에 텔레그램의 서버가 있는 상황에서 현지를 압수수색할 수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텔레그램은 지난해 잊혀질 권리를 더욱 강조하며 아예 이용자와 상대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모두 삭제할 수 있는 기능까지 업데이트했다. ICT 업계에서 국내 수사당국의 텔레그램 공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n번방 사건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텔레그램과의 협조는 어렵지만, 사실 n번방의 박사 혐의를 소명하거나 갓갓 및 회원들을 체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기 때문이다.

먼저 n번방 회원들이 텔레그램을 사용해 본인의 흔적을 지워도, 텔레그램 자체 화면을 누군가 캡쳐했다면 이 역시 법정에서 범죄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텔레그램을 통해 음란물을 주고받고 이를 지웠다고 해도 물리적인 캡쳐가 이뤄지는 순간 이는 범죄의 증거물이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불륜 논란을 일으켰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경우 텔레그램을 통해 나눈 메시지 캡쳐가 법정에서 증거물로 채택된 사례도 있다. n번방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상당히 많을 전망이다.

n번방에서 암호화폐 등으로 거래하며 최대한 흔적을 지웠다고 하지만, 이 역시 헛점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불법적인 행위를 할 경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거래하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직 개인의 코인지갑이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의 경우 대부분의 암호화폐 이용자들은 국내 거래소들을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하며 그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있다. n번방의 회원들도 대부분 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고, 결국 꼬리가 잡힐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암호화폐 거래로 본인의 부적절한 행위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접어두는 편이 좋고, 그 전에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이유다.

무엇보다 박사나 왓치맨, 갓갓 등 n번방의 운영자들이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운영자들은 유료로 회원을 유치할 경우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을 얼굴사진과 함께 받았다. 이와 관련된 자료가 있는만큼 운영자는 물론 회원들에 대한 체포는 시간문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압축한 후 각 용의자들의 스마트폰 등의 기기를 디지털 포렌식으로 걸러내면 덜미가 잡힐 수 밖에 없다. 나아가 확보된 용의자들을 중심으로 CCTV 등을 통한 물리적 조사에 나서면 수사는 더욱 탄탄해진다.

가능성은 낮지만 수사당국이 FBI 등과 공조하는 한편 텔레그램에 협조 요청을 끌어낼 여지도 있다. 물론 텔레그램의 탄생이 암호 메신저를 표방하고 있으며 각 국의 수사당국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안의 중요도를 고려하면 전격적인 판단도 나올 수 있다. 다만 텔레그램의 서버 방식이 일반적인 모바일 메신저와 달리 말 그대로 정보의 휘발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텔레그램과 공조해도 의미있는 단서를 찾을 수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명백하게 불법적인 일이 벌어졌고, 이미 용의자들이 흘린 단서가 많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수사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n번방의 악마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실고 있다.

최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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