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슬레는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 등과 어울리며 파리 근교의 풍경을 그 자리에서 그리는 ‘외광파(外光派)’의 중심인물이 됐다. ‘외광파’란 글자 그대로 풍경을 그리더라도 완성은 스튜디오에서 하던 당시 관행을 거슬러 야외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과 공기의 흐름을 그대로 살려 그려내던 화가 일군을 일컫는다. 시슬레의 작품 속, 오솔길에 드리운 보라색 그림자, 공기 중에 감도는 분홍 햇빛, 바람에 흔들리며 노랑, 초록, 주홍으로 달리 보이는 나뭇잎은 날씨가 온화한 어느 날 한가롭게 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 시슬레의 화폭에는 이처럼 극적인 장관이나 빼어난 건물이 없이 그저 평온하고 소박한 주위 풍경만이 등장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살아생전 이름을 날린 적이 없고, 사후에도 그 명성이 다른 동료들에게 한참 못 미치지만 ‘인상주의의 교과서’로 꼽히는 건 그의 작품들이다.
이 그림은 특이하게도 세 번이나 도난당했다. 1978년엔 대여 중에 분실된 걸 되찾았고, 1998년엔 미술관 큐레이터가, 2007년에는 무장 괴한들이 훔쳐 갔다. 창밖은 봄인데 마음껏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신선한 산들바람 뿜어내는 이 풍경을 훔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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