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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물건처럼…돌려쓰고 버림받는 ‘미용 모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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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생존 위협받는 미용 모델견 실태

날선 가위에 신체 절단, 가혹한 일정에 스트레스로 죽기도

학원-수강생 ‘위탁’ 계약 뒤 실습·시험에 동원되며 혹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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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미용사로 일하는 ㄱ씨와 함께 사는 개 레오(가명)는 ‘위탁견’ 혹은 ‘모델견’으로 불린다. 레오는 서울의 한 반려동물 미용학원 소속(소유)이지만, 실제로는 ㄱ씨와 함께 살고 있다. 이 학원 수강생이었던 ㄱ씨는 학원과 위탁 계약을 맺고 레오를 데려왔다. 미용사 자격 실습과 실기 시험을 함께 할 모델견이 필요했다.

레오는 반려견 번식장에서 태어나 서울의 ㄴ반려동물 미용학원으로 왔다. ㄴ학원장은 레오의 외모를 눈여겨 봤다. 레오의 과업은 반려동물 미용사 실기 시험의 모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실기 시험에 앞선 실습 수업에도 동원됐다.

실습 시간엔 종종 개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직 가위질이 서툰 학원생들은 털 속에 숨은 혀끝이나 귀 끝을 자르고, 클리퍼(털을 다듬는 기계)로 배에 상처를 내는 실수를 하곤 했다. 학원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듯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했다. 개가 테이블에서 떨어져 죽은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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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견 또는 모델견


수많은 개들이 실습용 테이블 위에 올랐다. 레오처럼 학원에 소속된 모델견도 있었고, 학원이 계약한 번식장에서 빌려온 종∙모견들도 있었다. 학원은 레오와 같은 처지의 모델견들을 ‘위탁견’이라고 불렀다. 학원 소유이지만, 학생들에게 위탁해 기르는 개들이다. 번식장에서 빌려온 개들은 ‘농장견’이라고 불렸다.

위탁견과 농장견은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구분할 수 있었다. ㄴ학원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되는 번식장에서 개들을 데려온다고 했지만, 심각한 상태의 개들이 많았다. 뒤엉킨 털, 지독한 냄새, 한 번도 치료받은 적 없어 보이는 종양 덩어리, 피부병…. 레오의 수탁자인 ㄱ씨는 그런 농장견들의 모습을 보며 울면서 목욕을 시킨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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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성적을 잘 받고 싶은 학원생들은 농장견보다 위탁견으로 시험을 보고 싶어했다. 농장견은 번식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털이나 외모 관리가 안 되었거나, 사람과 관계를 잘 맺도록 사회화 교육이 되어 있지도 않았다. 사람도, 동물도 다칠 위험이 크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ㄱ씨도 레오를 위탁견으로 데리고 왔다. 학원은 1년 단위의 ‘위탁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계약서 내용이 좀 이상했다. 학원은 개를 맡기면서 수탁자인 ㄱ씨에게 보증금 60만원을 받았다. 계약서 내용에 따르면 ㄱ씨는 레오를 맡아 기르면서 레오가 모델견으로 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빗질, 목욕, 서서 잘 기다리는 훈련을 시켜야 했다.

사료나 심장사상충 예방약 등은 ㄱ씨 자비로 해결하라고 쓰여 있었다. 원생의 ‘부주의’로 인한 질병 치료도 원생이 책임을 지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 질병의 경계가 무엇인지 ㄱ씨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하나 따져서는 위탁견을 받기 어려울 것이므로 일단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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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위탁 계약


계약서엔 없지만, 공공연히 동의해야 하는 내용도 있었다. 학원에서 기본 예방접종을 제공해준다고 했지만, 동물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싶으면 ㄱ씨가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ㄴ학원은 위탁견 예방접종을 학원에서 직접 했다. 개∙고양이에 대한 자가 접종은 불법이다.

은퇴시키고 학생이 위탁견을 데리고 가게 되면 계약이 해지가 되는 셈이므로 보증금을 못 받는 것도 당연했다. 60만원에 학원에서 개를 데려오는 셈이었다.

1년간 레오를 기른 ㄱ씨도 레오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생각에 은퇴를 시키고 싶었다. 6개월~1년 주기로 반려인이 바뀌는 위탁견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많다. ㄱ씨는 레오와 첫 산책 때, 레오가 마치 이전에 함께 살던 사람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초반 몇 달은 탈모도 심각했다. 모델견으로서 ‘경쟁력’이 사라진 개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ㄱ씨는 레오를 그런 구렁텅이로 다시 밀어 넣기 싫었다.

하지만 ㄴ학원은 레오의 외모 상태가 좋기 때문에 은퇴시켜줄 수 없다고 말했다. 계약서에도 “모델견은 ㄴ학원의 가족이므로 분양을 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어 ㄱ씨는 할 말이 없었다. 대신 ㄴ학원장은 계약 기간을 연장해줬다. 레오는 학원을 졸업한 ㄱ씨와 여전히 함께 살면서, 학원 실습 수업에 동원되거나 시험장 모델견으로 선다. ㄱ씨가 헤아려보니 평균 45일에 한 번씩 레오는 학원과 시험장에 가서 남의 손에 목욕을 하고, 털을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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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날엔 기진맥진


레오는 특히 1년에 4번 있는 시험을 치르고 오면 기진맥진이 되었다. 미용 실기 시험에 동원되는 개들은 하루 전날 학원에 모인다. 밤새 조를 짜 목욕을 하고 털을 말리며 시험을 준비하고, 오전 일찍 학원에서 빌린 버스를 타고 대구, 대전, 안성 등 지역의 큰 체육관에서 열리는 시험장으로 이동한다.

차를 타고 오래 이동한 개들은 실기 시험 2시간 내내 테이블 위에 선 채 털이 깎인다. 시험을 마치면 다시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돌아와 번식장 개들은 번식장으로, 위탁견인 레오는 ㄱ씨에게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일부 수험생들은 배변 등의 불편을 덜기 위해 개에게 물이나 밥을 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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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시험 모델에 대한 대가로 레오에게 5만원의 모델료를 지급하지만, ㄱ씨는 “돈도 받기 싫고, 시험 끝나고 돌아와서 구토하고 설사하는 레오를 보면 5만원 이상의 희생을 치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십년간 업계에서 일한 관계자는 “시험에 동원된 개들 대부분 스트레스에 압도돼 구토, 설사하고 드물게 쇼크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ㄴ학원장은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학생들 좋은 성적 받게 하려고 데려온 개들이다. 반려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제보자의 (혹사나 학대) 주장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학원과 학원생 간에 쓰인 ‘시험 모델견 위탁 계약서’를 보면 첫 번째 항목에 “원생에게 애견미용사 자격검정대회에서 최상의 모델견으로 더 높은 성과를 얻고자 한다”고 돼 있다.

ㄴ원장은 “60만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부분도 실제로는 제가 손해를 본 셈”이라고 말했다. “위탁견들은 (펫숍 등에서) 최소 150만원 이상 가치가 있는 개들이다. 정이 들어서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보증금을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제가 개를 사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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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생명으로 실습을 해야하나


학원에서 위탁견, 번식장 개 등 실제 개를 수업에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격증 실기 시험을 실제 개로 치르기 때문이다. 시험 합격이라는 목표 뒤에 혹사당하는 개들의 몸과 마음의 병은 간과되고 있다.

이에 국내 반려견 미용 시험을 치르는 양대 단체 가운데 하나인 한국애견협회는 지난해 말 모든 시험에 위그(모형견)를 도입하고 실제 개로 시험을 보는 것을 중단했다. 박애경 애견협회 사무총장은 “시험의 공정성을 위해 모두가 같은 형태 위그로 시험을 보는 방식을 도입했다. 실습과 시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동물 학대 문제를 방지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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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단체인 한국애견연맹은 미용사 3급만 모형이나 실견을 선택해서 시험 볼 수 있도록 하고, 1급과 2급, 교사 자격증 실기 시험은 반드시 실견으로 본다. 연맹은 “위그를 사용하여 시험을 치르면, 털을 깎는 것 외에도 중요한 개을 다루는 방법이나 위생 미용(생식기, 발바닥, 배 관리, 항문낭 짜기 등) 방법을 간과하거나 소홀”할 수 있고 “(결국) 실견 미용반을 재수강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고 말했다.

애니멀피플과 수차례 이메일, 전화 인터뷰를 한 ㄱ씨는 동물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현행 시험 제도와 학원의 위탁견 운영에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학교에서 학업보다 학생의 인성 교육이 먼저인 것처럼, 누군가의 소중한 반려견을 다뤄야 하는 애견미용사를 양성하는 학원에서는 미용 기술보다는 동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태도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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