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봉준호 감독처럼, 기업도 주52시간 지키고 경쟁력 높여야"
野, 조국 사태 때 "기생충 가족" 공격… '혈세 기생충 방지법' 추진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연 총선 공약 발표회에서 1호 공약으로 '전국 무료 공공 와이파이(wifi) 구축'을 내걸었다. 민주당은 이 공약을 발표하면서 영화 '기생충((Parasite)'의 한 장면을 틀었다. 영화 속 출연자들이 옆집 와이파이 신호를 몰래 쓰기 위해 반지하집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통신 데이터 소외 계층을 겨냥한 무료 와이파이 공약을 홍보하기 위해 '기생충'의 한 장면을 활용한 것이다.
여당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4월 총선 캠페인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생충'은 작년 5월 국내에서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모았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미국 아카데미상 6개 부문 최종 후보로 올랐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갖춘데다 부(富)의 양극화와 계급 충돌 등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다뤘다는 점에서 여당이 총선 캠페인 어젠다로 내세우려는 '포용 담론'에 딱 들어맞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맞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에서는 "현 여권의 행태가 '기생충'에 담긴 모순 자체"라 공격하며 일명 '기생충 방지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생충'은 반지하 셋방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식구들과 볕이 넘치도록 드는 고급 주택에 사는 박 사장(이선균)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풍자적으로 다뤘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5일 총선 1호 공약으로 '무료 와이파이' 정책을 발표할 때 국회 당 대표 회의실 내 TV에서 영화 '기생충' 속 한 장면을 상영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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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지난 22일 민주당의 총선 정강·정책 방송 연설자로 나섰다. 김 의원은 이날 연설에서 "'기생충'은 불평등에 대한 영화"라면서 "영화에서 그린 한국 사회 불평등이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절실한 문제이기에 이처럼 전 세계가 감응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기생충'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들추면서, 이를 해결할 정당은 민주당이란 점을 부각시키는 전략이다.
민주당은 '기생충'을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사례로도 활용하고 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기생충이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자 "기생충이 더 값진 이유는 봉 감독이 주52시간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면서 만든 영화라는 점"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주52시간 근무제'의 모범 사례라는 것이다.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정당하다는 근거로 '기생충'을 들기도 했다. 민주당 김영호 원내부대표는 지난 16일 "이 작품이 전 세계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양극화와 공정함에 대한 날카로운 비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로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이행할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무료 와이파이' 공약도 '기생충'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20~30대는 가계 통신비 부담 때문에 무료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다닌다. 영화 기생충이 그런 장면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며 "젊은 층, 취약계층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1호 공약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주인공 남매가 PC방에서 명문대 재학증명서를 위조하고 있는 모습. /영화 기생충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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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활용한 민주당의 총선 캠페인에 맞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현 여권이 보이는 행태가 영화 '기생충'에 담긴 부조리극 자체"라며 공격하고 있다. 민주당이 '기생충'에 담긴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공약하고 있지만 현 여권의 부조리한 행태가 영화 속 박 사장 가족을 속여 기생하는 기택 가족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은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조국 사태' 때 '기생충'과 연결 지어 집중 비판했다.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딸을 위해 동양대 총장 직인(職印) 파일을 이용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표창장을 위조한 의혹이
영화 속에서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것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씨가 동양대 표창장 위조를 기생충처럼 했다고 한다"며 조 전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야당도 이른바 '기생충' 공약을 추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등이 참여하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는 보수 통합 신당의 '문재인 정권 바로잡기' 과제 중 하나로 '혈세 기생충 방지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친문(親文)·운동권·캠코더(문재인 대선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태양광과 같은 정부 정책에 기생하는 사업을 해 세금을 빼먹거나, 일자리 창출을 가장한 공공기관 자회사 낙하산 인사, 세금으로 지급되는 고액 강연료 수수 행위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정치권에서는 다음달 9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수상할 경우 정치권의 총선 '기생충 캠페인'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야의 '기생충 마케팅'이 어느 쪽에 더 유리할지를 두고는 관측이 엇갈린다. 빈부 격차라는 '기생충'의 큰 주제로 보면 한국당보다는 민주당이 내세우는 '포용 담론' 홍보에 더 적합할 것이란 견해가 있지만, 이 영화가 '약자는 착하다'는 기존 인식을 깨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 야당이 민주당 포용 담론을 집중 공격하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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