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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특파원 리포트] 후쿠시마 원전 마을에서 보낸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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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1월 19일 촬영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전경. /교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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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일본인 지인은 “후쿠시마 원전에 취재 가는 건 좋은데, 굳이 도미오카마치에서 하룻밤 묵을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왜”라는 질문에 지인은 대답은 못 하고 난색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은 이제 안전하다’는 일본인조차 원전 옆 마을에서 숙박하는 건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도미오카마치는 후쿠시마 제1원전과 제2원전 사이에 있는 원전 마을이다.

이달 6일, 2년 만에 후쿠시마 원전을 찾았다. 당시와 다른 점은 숙소다. 2년 전엔 취재를 주관한 포린프레스센터재팬이 숙소를 후쿠시마시(市)에 잡았다. 당시엔 후쿠시마시가 원전과 가까운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떨어진 먼 곳에 숙소를 잡은 것이다.

본지만 홀로 간 이번엔 후쿠시마 원전의 입구인 ‘도쿄전력 폐로 자료관’이 있는 도미오카마치에 숙소를 잡았다. 5일 밤 도착한 무인 역(驛) 도미오카역사에는 피폭량 전광판이 있었다. 0.062마이크로시버트였다. X선 촬영보다 훨씬 적은 피폭량이다. 역 앞의 유일한 이자카야(일본식 술집)는 10석도 안 되는 작은 규모였지만 만석이었다.

13년 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최대 21미터의 쓰나미가 닥친 도미오카마치는 ‘유령 도시’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원전에 ‘노심 용융(멜트다운·meltdown)’ 사고가 터졌을 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야 했고 현재도 일부 지역은 방사선 노출 위험 탓에 ‘귀환 불가 지역’이다. 사고 전 1만6000명이던 인구는 2000여 명에 불과하다. 귀향을 포기한 주민도 적지 않다. 아침에 해안선을 따라 30분 이상을 산책했지만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호텔과 마트, 은행, 이자카야 등이 하나씩 운영을 재개하고 있다. 은행이 돌아온 건 2017년이라고 했다. 일본은 2051년까지 8조엔(약 72조6000억원)을 투입해 후쿠시마 원전의 폐로(廃炉)를 추진하고 있다. 880톤에 달하는 핵연료 잔해(데브리)를 모두 회수해 안전하게 원전의 문을 닫겠다는 것이다. 사실 의외의 선택이다. 1980년대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구(舊)소련은 쉬운 길을 택했다. 주변 30km 이내 주민 37만명을 이주시킨 뒤, 사고 원자로에 콘크리트를 쏟아 밀봉했다. 체르노빌 원전 인근의 땅을 버린 것이다.

일본은 포기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전례가 없는 만큼,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일본 언론들조차 “2051년 후쿠시마 원전 폐로는 불가능” “녹은 핵연료를 모두 처리하는 데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보도한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피폭 위험 탓에 모든 작업을 원격 로봇으로 한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니, 현실적으로 폐로가 어렵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그렇다고 폐로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사고 난 원전의 폐로는 원전과 공존해야 하는 인류가 한 번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동시대를 사는 지구인으로, 일본의 폐로가 성공하기를 희망한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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