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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 (목)

3가지 에피소드로 본 박항서 인기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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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베트남-68] 이번 주 베트남 얘기를 하면서 박항서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가 23세 이하(U-23)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동남아시아(SEA)게임 축구 금메달을 따낸 사건은 한국에도 너무 유명하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베트남에 나와 산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그 기간은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맹위를 떨친 시간과 거의 정확히 일치합니다. 저는 그가 베트남을 스즈키컵 정상에 올린 순간을 지켜봤고 월드컵 축구 예선에서 선전하는 모습도 보고 있으며, 그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과 재계약을 맺고 SEA게임 축구 금메달을 따낸 사건까지 관전하게 되었습니다.

박 감독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이제 소개될 만큼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직접 겪은 3개의 스토리만 짧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결론만 놓고보면 박 감독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든 간에 그를 향한 베트남의 사랑은 빨리 식기는 오히려 힘들 것 같습니다. 그는 늘 "인기는 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얘기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행보를 보입니다. 얼마 전 귀국길에서도 자신보다 코치를 먼저 내세우는 겸양의 자세를 보였습니다. 박 감독은 겸손함을 잃지 않기 위해 타고난 성품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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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를 동남아시아 최정상에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이 14일 오전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박 감독이 이끄는 U23 베트남 대표팀은 22일까지 통영 공설운동장에 베이스 캠프를 꾸리고 동계전지훈련에 들어간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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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EA게임 우승 후 집에 오기까지

SEA게임이 열렸던 그날 저는 공교롭게 지인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시간이 공교롭게 우승이 확정됐던 바로 그 시간이었습니다. '제 시간에 집에 갈 수 있을까' 걱정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달릴 때만 하더라도 "하노이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큰길로 접어들자마자 베트남 국기와 태극기를 번갈아 들고나온 '국기 부대'에 점령당한 길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인도를 따라 저 멀리 걷는 소년의 발걸음과 제가 탄 자동차 속도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험을 한참 해야 했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끌 당시 '히딩크 감독을 귀화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래도 네덜란드 국기가 테헤란로에 나부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베트남 거리에 휘날리는 태극기의 숫자는 오히려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어렵게 길을 헤치며 돌아온 그날 밤, 집 로비에 교대근무를 하는 정복 차림 직원은 저를 보고 '박항서'를 외치며 이빨이 다 드러내도록 한껏 웃었습니다. 평소에는 데면데면하기 그지없던 사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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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축구를 동남아시아 최정상에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이 14일 오전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감독이 이끄는 U23 베트남 대표팀은 경남 통영에서 전지훈련을 갖는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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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트남 친구 전화에 시달린 지인

그러나 이것으로는 베트남 사람들의 깊은 속내까지 파악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지인 중에 베트남에 산 지 아주 오래됐고 그래서 베트남 지인이 많으며, 베트남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고 그래서 대관 업무에도 능숙한 스페셜리스트가 있습니다. 그는 베트남의 SEA게임 우승 직후 평소 가깝게 지내는 베트남 정부 고위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뭇 취해 있었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이 얘기를 한국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데, 말이 통하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지금 너한테 한다.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에 보내준 한국과 한국인에게 정말 너무나 감사하다. 이 얘기를 한국 사람들에게 꼭 전해주길 바란다."

3. 박항서 감독의 속내

박 감독의 겸손함이야 이미 더 설명할 게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얘기를 매우 진중하고 정확하고 또한 명석하게 말합니다. '나는 베트남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었다'며 매스컴이 좋아할 만한 가슴 뜨거운 얘기도 할 줄 하는 전략가입니다. 다른 지인이 그와 밥을 먹다가 들은 박 감독의 얘기입니다. "정말 겸손함을 잃지 않기 위해 처신을 똑바로 하려고 한다. 행동 하나라도 잘못되면 한번에 잘못될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늘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삼가는 자세로 살고 있다."

박 감독의 겸손함이 가슴속에서 뿐만 아니라 머리에서도 나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일치하는 '겸손 캐릭터'가 그에 대한 평가를 단숨에 180도 돌릴 큰 실수를 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박 감독은 늘 최선을 다할 것이지만 승패의 인연은 꼭 노력대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남은 일정을 소화하며 박 감독이 지금보다 못한 성적을 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결과와 무관하게 베트남 마음속으로 파고든 박 감독의 무게감은 하루 이틀에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박 감독이 앞으로도 계속 승승장구하기를 진심으로 저도 기원합니다.

[하노이 드리머(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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