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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덕후 월드] 낚시인만 아는 味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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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바다에서 가장 맛있는 담백·달큼한 긴꼬리벵에돔

대물 낚이고 맛도 절정인 이 계절을 기다려왔다

조선일보

허만갑 낚시 칼럼니스트·前 낚시춘추 편집장


물고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꼭 던지는 질문이 있다. "우리 바다에서 가장 맛있는 물고기는 뭐죠?" 그때마다 곤혹스럽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모범 답안은 있다. 미식가들이 손꼽는 다금바리, 줄가자미, 참복, 돌돔…. 하지만 내가 알고 낚시인들이 아는 최고 미어(味魚)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잠시 망설이다 '진짜 답'을 말하면 사람들은 눈을 껌벅이며 묻는다. "다시 말해주세요. 고기 이름이 뭐라고요?" "긴꼬리벵에돔요!"

농어목 황줄깜정잇과의 긴꼬리벵에돔은 벵에돔과 거의 비슷하나 더 따뜻한 물에 사는 남방종이다. 일본에는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귀하다. 주산지는 제주도인데 어획량이 적어서 사람들이 잘 모른다. 심지어 어류학자들도 1990년까지 몰랐다. 제주 낚시인 사이에서 '벵에돔과 닮았지만 다른 물고기가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자 어류학자 이완옥 박사와 조선일보사의 '월간낚시'가 공동 조사하여 그 물고기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낚시 대상어 오나가구레(尾長グレ)와 동일종임을 확인했다. 그렇게 해서 긴꼬리벵에돔은 한국어류도감에 처음 이름이 올랐다.

낚시인이 찾아내고, 아직도 낚시인만 알고 있는 물고기. 벨벳처럼 윤기나는 흑갈색 비늘에 푸른 눈동자. 낚시인의 눈에는 아름답지만 거대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 외모를 보고 감탄사를 지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맛을 보면 반응이 달라진다. 나는 돌돔, 벵에돔, 긴꼬리벵에돔을 썰어서 섞어놓고 사람들이 어떤 회를 맛있게 먹는지 여러 번 지켜봤다. 처음엔 여기저기 향하던 젓가락은 금세 한곳으로 집중된다. 그리고 항상 긴꼬리벵에돔 회가 맨 먼저 사라진다. 한번 먹어보면 잊을 수 없는 그 맛의 비밀은 긴꼬리 특유의 분홍색근에 있다. 흰 살 생선의 백색근과 붉은 살 생선의 적색근을 다 품고 있어서 기름지면서도 쫄깃하고 담백하면서도 달큼하다.

조선일보

긴꼬리벵에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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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낚시인들이 긴꼬리(긴꼬리벵에돔의 애칭)를 선망하는 이유는 맛 때문만은 아니다. 럭비공처럼 탄탄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저돌적 파이팅에 혼을 뺏긴다. 유영층이 자주 변하는 긴꼬리를 잡으려면 빠른 상황 판단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구멍찌낚시 중에서도 난도가 높다. 감성돔 낚시가 조준 사격이라면 긴꼬리 낚시는 클레이 사격이다. 감성돔 낚시는 긴 시간 밑밥의 띠로 포인트를 구축하는 지구전이지만 긴꼬리 낚시는 어군이 집결한 짧은 시간에 투척 거리, 입질 수심, 견제(줄을 당겨 미끼에 긴장감을 주는 조작)의 삼박자를 맞춰내는 속도전이다. 이런 감각적 패턴이 젊은 층에 어필해 이삼십대 낚시인 사이에서는 감성돔보다 긴꼬리벵에돔의 인기가 높다.

겨울철 긴꼬리벵에돔 낚시터는 국토 최남단에 형성된다. 여름과 가을에는 제주도 북쪽과 남해 원도에서도 긴꼬리를 만날 수 있지만 겨울에는 고수온이 유지되는 남제주의 가파도, 마라도, 지귀도까지 가야만 한다. 하지만 연중 가장 굵은 40~50㎝ 씨알이 낚이는 이 계절을 마니아들은 기다려왔다. 긴꼬리벵에돔의 맛도 지금 절정이다.


덕후가 주는 TIP


최남단 마라도는 일반 관광객이 긴꼬리벵에돔 회를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민박집 주인이나 횟집 주인이 직접 낚은 긴꼬리벵에돔을 팔기 때문이다. 가격은 돌돔보다 싼 1㎏(40㎝)에 15만원 선. 맛은 긴꼬리벵에돔이 월등한데도 사람들은 유명한 돌돔만 찾는다. 진가와 명성 사이에는 종종 이런 간극이 있다.

[허만갑 낚시 칼럼니스트·前 낚시춘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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