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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양상훈 칼럼] ‘이게 나라냐’는 文에게만 할 질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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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準핵국가 日’ 30년 사명 완수 이틀 뒤 총리 사임한 나카소네를 보며 국가와 지도자를 생각한다

북핵에 깔리게 된 한국… 정권, 정치인, 국민 누구도 실질 대응책 준비 안 해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사망했다. 지한파라고 하지만 그는 오로지 ‘일본파’였을 뿐이다. 나머지 모습은 모두 위장이라고 생각한다. 나카소네는 국가란 무엇이고 정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 사람이다.

일본은 핵 폭격을 당한 유일한 나라다. 그래서 '비핵(非核)'을 지향한다고 한다. 이 말을 그대로 믿는 나라가 있다면 철이 덜 든 나라다. 핵 폭격을 당했기 때문에 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핵을 갖지 않으면 선진 강대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죽음으로 체험한 나라다. 그러나 절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속으로 차근차근 준비한다. 평생을 바쳐 그 일을 하는 정치인이 있다. 국민은 그런 정치인을 뽑아주고 총리까지 시켰다. 그 정치인이 바로 나카소네다.

일본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1967년 핵무기를 제조·보유·도입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선언하고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1969년 일본 외무성 관리들이 서독 외교관들에게 '핵무기 공동 개발'을 제안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사토는 비밀리에 내각에 핵무장 가능성도 검토시켰다. 검토 책임자는 방위청 장관이었던 나카소네였다. 나카소네가 책임자가 된 것은 1954년 일개 의원으로서 온갖 지략을 동원해 처음으로 원자력 예산을 통과시켰고 2년 뒤엔 원자력 기본법까지 입안한 '일본 핵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나카소네의 첫 원자력 예산은 2억3천5백만엔이었는데, 핵폭탄 원료인 우라늄 235와 숫자가 같다.

총리가 된 나카소네는 필생의 과업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일본이 반드시 넘어야 할 국가적 장벽이 원자력과 항공우주라고 했다. 결국 두 분야 모두 성공했다. 핵폭탄을 만들려면 핵을 재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했다. 나카소네는 1985년 자발적으로 일본 엔화를 대폭 절상하는 '플라자 합의'에 서명한다. 미국 경제를 위하고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는 합의다. 여러 국제적 환경이 있었겠지만 필자는 이 양보에 미·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는 나카소네의 포석도 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카소네는 레이건 미 대통령에게 상상을 넘는 공을 들였다. 서로 '론' '야스'라고 할 정도의 친밀도를 만들었다. 협정 개정 협상이 한창이던 1987년엔 일본 기업인들까지 총출동하다시피 나서 미국을 공략했다. 마침내 미국이 일본의 핵 재처리를 승인했다. 세계 유일 사례다. 이 합의가 이뤄지자 나카소네는 이틀 뒤 총리직을 사임했다. 국가를 위한 30여년 사명을 완수한 이상 그에게 총리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 일본은 플루토늄을 30t 확보하고 있다. 핵무기를 5000개 만들 분량이다. 핵무기를 단 3개월 만에 만들 기술도 갖고 있다. 고체연료 위성 로켓으로 ICBM 기술을 얻었고 우주 광물을 갖고 온다는 명분으로 탄두 대기권 재진입 실험도 성공했다.

일본은 원자력 추진 잠수함도 결국 갖게 될 것이다. 일본 잠수함은 4000t이 넘는다. 재래식 잠수함으로서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이 역시 원자력 잠수함을 향한 장기 포석으로 본다. 일본은 이미 함정용 소형 원자로를 만들어 1년간 원자력 항해 시험까지 마쳤다. 소형 원자로 수중 가동 실험도 했다. 준비는 끝났고 결단만 남은 것이다. 이게 나라다.

우리에게도 나카소네 같은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핵으로 일본을 굴복시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다. 그것이 국제정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 사람이었다. 그는 1956년 한·미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다. 원자력이 뭔지도 모르는 나라였다. 단 한 명의 원자력공학자도 없었다. 그래도 이 대통령은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원자력원'을 설치했다. 한양대,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가 생겼다. 학부핵공학과는 선진국도 거의 없을 때였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의 원자력 한국이 있다. 이런 사람이 국가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카소네 못지않게 원자력에 집념을 보였다. 1967년 원전 2기 건설을 결정하고 실행했다. 두 번째 원전은 핵무기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게 바로 문재인 정권이 없애려 안달하는 월성 1호기다. 박 대통령은 1972년 초 비밀리에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력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미완으로 끝났다.

김정은의 핵 보유는 우리에겐 재앙이지만 그에겐 지극히 ‘합리적’인 생존 선택이다. 김정은이 협상으로 핵을 포기한다는 것은 동화나 만화에 나올 얘기다. 문제는 김정은 핵에 깔려 죽게 된 한국이 그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정권도, 정치인도, 국민도 없다. 어떻게 하자는 건가. 피땀 흘려 세운 세계적 경쟁력과 힘을 탈원전으로 스스로 망치려는 정권까지 등장했다. 국민이 그런 정권을 뽑고 꽤 지지한다. ‘이게 나라냐’는 질문은 문(文)에게만 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양상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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