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4 (목)

이슈 한미연합과 주한미군

[레이더P] 방위비 갈등이 불러온 강경 주장, 핵무장론과 협정폐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미·일 3국 갈등을 야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가 종료 연장으로 마무리된 가운데 한미 간 의제로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이 남았다. 미국 측은 재차 방위비분담금 증액 압박을 시작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5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하나의 일을 다른 것과 관련 짓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며 지소미아와 상관없이 방위비 관련 교섭을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매일경제

한국과 미국은 19일 내년도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을 결정하는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제3차 회의를 열었으나 양측의 입장이 강하게 부딪힌 끝에 다음 회의에 대한 논의도 없이 종료됐다. 사진은 이날 회의 종료 뒤 미국대사관에서 관련 브리핑을 하는 제임스 드하트 미국 측 수석대표 (왼쪽 사진)와 외교부에서 브리핑하는 정은보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오른쪽 사진).[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19일에는 방위비분담금 협상 3차 회의가 미측의 퇴장으로 파행됐다. 당시 제임스 드하트 미측 협상 대표는 곧바로 언론 브리핑을 열어 "한국팀이 내놓은 제안은 공정하고 공평한 부담 요청에 부응하지 않았다"며 한국 측을 압박했다. 우리 측 정은보 협상대사는 "미국 측은 새로운 항목 신설 등을 통해 방위비분담금이 대폭 증액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우리 측은 지난 28년간 한미가 합의해온 SMA 틀 내에서 상호 수용 가능한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파행의 단초는 미측의 대폭 늘어난 분담금 증액 요구다. 미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의지에 따라 분담금을 올해의 5배가 넘는 50억달러 수준으로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부자 나라'라며 주한미군 주둔 비용 대부분을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호 호혜'를 기반으로 해야 할 한미동맹을 사실상 미국의 '시혜'쯤으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측의 태도에 국내 여론은 들끓고 있다. 특히 '한미동맹 재검토'까지 꺼내는 강경한 목소리도 있다. 그 핵심에 보수 진영의 '핵무장론'과 진보 진영의 '협정 폐기론'이 있다.


다시 '핵무장론'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남한도 핵무기를 보유해 '핵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핵무장론은 그간 보수 진영 일각에서 나왔다. 2014년 당시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도 핵무장을 하되 북한이 폐기하면 우리도 즉시 폐기하는 '조건부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보다 앞선 2012년에는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도 "당장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핵을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 속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매일경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캡처


그런데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진행되는 중에 정치권에서 핵무장론이 나왔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22일 SNS 글에서 "이제부터라도 핵 균형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방위비 3차 협상이 진행되던 19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핵공유협정 체결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핵무장론'의 확산은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한미동맹이 구축한 신뢰, 즉 '한국이 핵무장하지 않아도 미국이 핵우산으로 막아준다'는 신뢰가 깨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가 동맹을 흔들어 그간 소수 의견으로 취급된 핵무장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셈이다.


"방위비협정 폐기" 주장도

진보 진영에서는 '방위비분담금협정을 폐기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핵무장론'이 미국에 '줄 건 다 주고 받을 건 다 받아오자'는 주장이라면 '협정 폐기론'은 '도저히 줄 수 없으니 판을 바꾸자'는 의미가 된다.

매일경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천정배, 송영길, 김종대, 김종훈 의원 공동주최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대응 방안 토론회, 방위비분담 6조원 요구? 특별협정 이대로 관찮은가?"에서 천정배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천정배 대안신당 의원 주최로 '방위비분담 6조원 요구? 특별협정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가 열렸다. 천 의원은 "미국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해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의 횡포에 맞서 협상을 중단하고 방위비분담특별협정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위원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금협정의 근간을 이루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짜놓은 판을 거부하지 않고서는 방어적·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글로벌 호구'가 된다"고 말했다.

'협정 폐기론'은 궁극적으로 '한미동맹 변화'를 조준하고 있다. 미국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를 거부해야 하는 만큼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한미동맹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대미 협상의 목표를 방위비분담금 인상 불가 및 한미동맹의 성격을 '한반도 유사시'로 분명히 하는 데 두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과 전략자산 포함 역외 전력의 미전개로 위협하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화 어렵지만 협상카드 역할 가능

'핵무장론'이나 '협정 폐기론'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이 원하는 걸 아예 안 줄 수는 없을 것"이라며 "50억달러까지 가지 않아도 20억달러 언저리에서 양측이 합의를 보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센터장은 "대신 우리가 준 만큼 가져오는 게 있어야 된다"며 "미사일 사거리 제한 폐지나 약한 수준의 핵공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된 '나토식 핵공유'가 '전술핵 재배치'보다 낮은 단계이면서 핵무기가 해당 지역에 상시 배치되는 개념이라면, 한국은 이보다 더 낮은 단계로 '유사시 핵무기 배치' 같은 수준의 핵공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게 신 센터장 분석이다.

'협정 폐기론' 역시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신 센터장은 "미국도 타협의 여지를 갖고 협상에 임할 것임을 감안한다면 (협정 폐기론에 담긴) 반미 여론을 조금이나마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두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20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미군 전투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20일 토론회에 참석한 홍지표 외교부 한미방위비분담협상 태스크포스 팀장은 "통일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국민의 96%가 분담금 증액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계시지만,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91% 나와 있다는 것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담금 증액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주한미군 철수를 감수하기 어려운 현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홍 팀장은 "어떤 건 좋은 포인트이며 (협상의) 총알이 될 거라 생각한다. 국민들 보시기에 당당한 협상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우종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