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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이슈 미술의 세계

"자신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안나, 제 이야기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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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민 디즈니 최초 한국인 여성 슈퍼바이저

"끌어주고 밀어주고, 디즈니 문화 가족 같다"

연합뉴스

인사말하는 이현민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영화 '겨울왕국 2'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이현민 슈퍼바이저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11.25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만화를 따라 그리던 아이는 커서 마침내 '꿈의 직장'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터가 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에서 안나 캐릭터를 총괄한 이현민(38)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이야기다.

'겨울왕국2' 제작진과 함께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26일 광화문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가 수십명 애니메이터와 함께 구현해낸 안나 캐릭터는 1편보다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안나는 여전히 밝고 씩씩하죠. 1편에서는 엘사와 떨어진 이후 혼자 외롭게 지내도 굳세게 자랍니다. 또 언니가 성을 뛰쳐나갔을 때도 직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하지만, 2편에서는 안나와 엘사의 역할이 조금 바뀝니다. 엘사가 '직진'한다면 안나는 걱정도 많아졌고, 언니를 보호하려고 하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을 때, 자기 자신을 믿고 내면의 힘을 끌어내 넘어져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하게 됩니다. 아울러 안나가 여왕으로서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자기만의 힘과 강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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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2'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2편은 안나의 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외양에도 변화를 줬다. 안나의 대표 헤어 스타일인 땋은 머리를 유지하되, 양 갈래 대신 땋은 머리를 위로 올려 성숙한 이미지를 풍기도록 했다. 의상 채도를 낮춘 것도 그 일환이다.

그는 "2편은 단순히 안나와 엘사의 새로운 모험이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와 내면 깊은 곳을 탐색하는 이야기여서 좋았고, 뜻깊은 속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편에서 엘사가 테마곡 '렛잇고'를 처음으로 부르며 달려가는 장면 등을 작업한 그가 수십명 애니메이터를 총괄하는 '슈퍼바이저' 자리에 오르기는 2017년 말쯤. 전 슈퍼바이저가 총괄 감독으로 승진하면서 그에게 바통을 넘겨 디즈니 최초 한국인 여성 슈퍼바이저가 됐다.

"저에게 후임을 맡겨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영광이었죠. 디즈니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을 부모처럼 챙겨주고 끌어주는 문화가 강합니다. 다들 디즈니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강하고, 디즈니 만화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그런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서 후세에도 그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족같이 지내며 작업합니다."

월트디즈니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석 애니메이터로 활약한 김상진 애니메이터에게도 많이 배웠다고 했다. 김 애니메이터는 몇 년간 디즈니를 떠났다가 최근 다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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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2'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이 슈퍼바이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국내에서 보냈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어린 시절에는 홍콩과 말레이시아에서도 몇 년간 거주했다.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유독 좋아하며 미술에 재능을 보인 그는 미국 코네티컷주 웨슬리안 대학교에 입학해 미술을 전공했고, 이후 미국 명문 예술학교인 칼아츠를 졸업했다. 디즈니 입사 전에는 '레니게이드 애니메이션'에 일하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더 미스터 맨 쇼'에 참여했다.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몸담게 된 것은 2007년 재능 계발 프로그램에 합격하면서다. 첫 작업으로는 '공주와 개구리'(2009)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악어 루이스 캐릭터를 맡았다. 이후 '곰돌이 푸' '주먹왕 랄프' '겨울왕국' '빅 히어로' '주토피아' '모아나'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2013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페이퍼맨'에도 참여했다.

삼남매 중 막내인 그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가족, 특히 어머니의 응원과 지원이 컸다.

"어머니는 저희 삼남매가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꼼꼼하게 지원해주셨어요. 어렸을 때 제가 만화책을 모으는 것도 기꺼이 허락하셨고, 미국 유학 갈 때도 많은 지원을 해주셨죠. 제가 고등학교 때 엄마가 위암 판정을 받아 유학을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때도 어머니는 제게 '무조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고 격려해주셨죠. 결국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제가 디즈니에서 꿈을 이루는 걸 보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겨울왕국2'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어머니 지원 덕분입니다."

그는 '겨울왕국 2'에서 안나가 동굴 속에서 테마곡 '더 넥스트 라이트 씽(The Next Right Thing)'을 부르며 절망적인 순간에서 희망을 찾는 장면을 '최애'(최고로 사랑하는) 장면으로 꼽았다.개인적인 경험과 오버랩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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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품에 안은 이현민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영화 '겨울왕국 2'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이현민 슈퍼바이저가 한지로 만든 엘사 등을 받은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19.11.25 mjkang@yna.co.kr



"어렸을 때는 우리 가족 5명이 함께 여행을 다니며 돈독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반년 뒤 가족과 떨어져 미국에 와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죠. 언니, 오빠, 아버지가 멀리서 최대한 많이 챙겨주셨지만 혼자서 딛고 올라가야 하는 일들과 고비가 많았어요. 안나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올라가는데, 그런 안나의 모습을 보고 많은 분이 저처럼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가족애와 같은 전통적인 덕목을 지키면서도 '포카혼타스', '뮬란', '라푼젤', '겨울왕국' 1, 2편처럼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며 변주했다.

"디즈니는 잠깐의 재미를 추구하기보다 몇 년 뒤, 몇십년 뒤에 보더라도 공감과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합니다. 사람 관계, 애정, 가족과 같은 보편적인 덕목들을 지켜나가되, 미래를 희망차게 볼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죠."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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