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리 |
UC 어바인,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일본 CCC그룹 스파이럴스타 상하이지사장, 세븐미디어 창업자, TTG 디지털커뮤니케이션그룹 공동창업자 / 채승우 객원기자
빡빡 민 대머리에 왼쪽 귓불에서 달랑이는 은색 피어싱, 활동하기 편한 청바지와 스니커즈. 약속 시각보다 30분 먼저 도착해 기자를 기다리고 있던 토니 리 코카콜라 이노베이션 컨설턴트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10대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간 재미교포, 20대에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현지 여성과 결혼하며 정착한 중국 전문가, 이후 20년간 중국 인터넷·미디어 업계에서 창업과 강의를 계속해온 디지털 전문가라는 배경에 걸맞게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넘쳤다.
토니 리 컨설턴트는 1999년 일본 정보기술(IT) 컨설팅 기업의 상하이 지사장으로 부임한 후 지금까지 중국 시장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인터넷 기업 이탕닷컴(eTang.com) 부사장을 거쳐 세븐미디어, 오퍼스커뮤니케이션스, 트리하우스 등 중국에서 홍보·미디어 회사 여럿을 창업했다. 지난해부터 코카콜라 대중화(大中華)·한국 이노베이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그가 담당하는 대중화 지역은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 마카오, 몽골을 아우른다.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아시아의 한국인’ 콘퍼런스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토니 리 컨설턴트를 만났다. "코카콜라 혁신과 관련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는 그에게서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을 들었다. 인터뷰는 10월 28일 서울 역삼동에 있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이노베이션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혁신과 관련한 일이라면 경계 없이 한다. 2018년 6월 코카콜라에서 중국 시장 위주로 1년 동안 디지털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고, 올해 6월부터 정식 임원으로 부임했다. ‘이노베이션 컨설턴트’라는 직함은 코카콜라에서 유일무이한 자리다. 그럼 어떤 혁신을 추진하느냐가 질문으로 떠오를 것이다. 나는 혁신을 ‘문제 해결’로 정의한다. 혁신의 첫걸음은 이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상상 속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어렵기도 하다. 이렇게 문제를 파악한 후 지속적이면서도 확장성 있는 해결법을 고안해낸다. 이게 내가 추진하고 있는 혁신 과정이다."
한국 인천 출신에다, 이민 간 재미교포 미국인인데 코카콜라에서 대중화 지역 혁신 담당이라는 중책을 맡겼다니 놀랍다. 어찌 보면 ‘중국인보다 더 중국인을 잘 아는 사람’으로 코카콜라가 토니 리를 공인해준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웃음). 코카콜라는 대중음료다. 깡촌에 사는 노인부터 억만장자 워런 버핏까지 누구나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코카콜라 사업모델 자체가 콜라 원액 계약을 한 보틀러에게 팔고, 마케팅에만 주력하는 것이다 보니 고객과 거리가 생겼다. 대중과 거리감을 좁히는 방법을 고안해 낼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조직 측면에서도 글로벌 기업 특성상 엘리트 인재가 많은 점은 강점이지만, 대중과 감각적인 거리가 생긴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요소였다. 그래서 엘리트가 아니어도, 현장을 다니며 소비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중국 소도시에서 전자상거래를 잘하는 회사나 대학 캠퍼스에 진입 가능한 업체를 소개해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실제로 회사 내부적으로도 기업가 정신(entreuprenership)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코카콜라 차이나가 개발하고 있는 고속철용 벤딩봇. 열차 복도를 무인으로 오가며 음료를 판다./ 토니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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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떤 혁신을 추진하고 있나.
"현재 중국 고속철 전용 무인 음료 판매 로봇을 개발·상용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동 시간이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 이상인 장거리 여행객이 이용한다. 주목할 부분은 장거리 여행인데도 열차 안에서 음료를 사 먹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건비 등 손익을 맞추기 어려웠던 탓에 열차 안 매점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열차 복도를 오가는 무인 음료 자판 로봇 ‘벤딩 봇 1.0’을 개발했다. QR코드로 계산하고 냉장 로봇에서 음료를 빼먹을 수 있다. 11월부터 2.0버전으로 제남(濟南)철로국과 장기 테스트에 들어간다. 최근 코카콜라는 소비자와의 ‘직접 접촉 포인트(direct touch point)’를 확보하려 하고 있는데, 이 방향성이 잘 드러나는 프로젝트다. 이 로봇이 창출할 매출이 연 2억달러(약 23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진척이 더디다. 로봇 관리 문제, 승무원 인센티브 문제, 데이터 공유 문제 등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로봇을 만드는 ‘하드웨어 혁신’은 쉬웠다. 그러나 상용화에 앞서 관련 부서, 이해 관계자들과 협업하는 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혁신’이 힘들다. 완전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사적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모바일 결제가 활성화된 중국 시장에 딱 맞는 프로젝트 같다.
"그렇다. 중국 시장은 코카콜라가 디지털 관련 실험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시장이다. 소비자는 새로운 기술에 빠르게 적응한다. 실용적이고 편리하다 싶으면 쉽게 받아들인다. 여기엔 중국 정부와 기업도 큰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는 정책이 하룻밤 사이 바뀐다. 공산당이 결정하면 예외 없이 바로 시행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도 바뀐 정책에 맞춰 사업 내용을 수정한다. 지난 5월 중순 상하이시(市)는 시내 모든 호텔에 일회용품 무료 비치를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를 발표했다. 그럼 호텔에 일회용 칫솔, 빗 등을 납품하던 업체는 다 망했을까? 웬걸, 오히려 더 잘된다. 침대 옆에 비품을 판매하는 소형 자판기를 만들어 호텔에 납품한다. 정부 정책 변화가 오히려 기회가, 돌파구가 되는 것이다."
요즘 중국 시장 트렌드는 무엇인가.
"트렌드에 연연하다 보면 정책 변화 등 각종 리스크에 무너지게 된다. 시장 데이터나 트렌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직접 발로 뛰고 눈으로 본 것을 통해 느낀 ‘감(感)’이 있어야 데이터와 트렌드가 힘을 받는 것이다. 나 역시 2주에 한 번 정도 아무런 목적 없이 중국 소도시를 여행한다. 지금 사무실 상하이에 있는데, 이곳에 나가는 날은 일주일에 3번 정도다. 그마저도 최대 3시간 정도? 일단 다니다 보면 영감이 온다. 막연한 의문이 구체적인 의문으로 변할 때가 있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하길 추천한다."
중국에서 사업 기회를 찾는 한국인에게 조언한다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 강점은 무엇이냐, 트렌드는 무엇이고 리스크는 무엇인가,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 등 깊이 생각할 필요 없다. 특히 중국에서 ‘최초’ ‘유일한’ ‘최첨단’ 같은 간판은 의미가 없다. 한 달만 지나도 비슷한 것들이 다 따라 나온다. 꼭 새로운 것을 할 필요는 없다. 이미 13억 중국 시장에서는 새로운 것들이 출시돼 있고, 시장도 형성돼 있다. 다만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도전해보라. 예컨대 한국 사람만의 앵글로 중국 시장을 보는 것이다. 그게 큰 강점이다. 한국인은 창의적이다. 그럼 일단 해보라. 이게 중국인에게 맞을까 생각하며 지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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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이코노미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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