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판문점 송환, 국정원·통일부 이견' 핵심 정보 담겨⋯정작 국방장관은 몰라
軍 전문가 "보고 체계 문란, 기강 해이"
軍, 北 ICBM 이동식발사 능력 있다더니 靑 정의용 "능력 없다" 하자 말 바꾸기도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지난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휴대전화로 보도 사진을 보고 있다. 청와대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의 휴대전화를 촬영한 이 보도 사진에는 김 차장이 JSA 중령으로부터 받은 '북한 선원 송환' 관련 문자 메시지 내용이 나와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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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북한 주민 2명이 지난 7일 판문점을 통해서 북송된다는 사실은 당일 국회에 출석한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받은 문자 메시지가 한 언론 사진에 포착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그 시각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던 정경두 국방장관은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정식 보고 체계를 통해 보고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차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청와대에 파견된 군 인사나 직원이 아닌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중령)이었다. 이 때문에 정식 보고체계를 건너뛰고 청와대로 직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정경두 장관은 전날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차장 문자메시지를 통해 알려진 북한 선원 2명 북송과 관련해 '이 사실을 알고 있냐'는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 질의에 "언론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JSA 중령이 정 장관을 비롯한 보고 체계도 건너뛰고 청와대 김 차장에게 중요 정보를 직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었다. 정 장관은 질의가 이어지자, 뒷자리에서 참모가 건네준 간략한 메모를 보면서 "(언론 보도 이후) 3시 12분 판문점을 통해 북측에 송환된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JSA 중령이 청와대 김 차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북한 주민들은) 자해 위험이 있어 적십자사가 아닌 경찰이 에스코트 할 예정' 등의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판문점을 통한 북 주민의 송환 예정 사실을 알리면서 '참고로 이번 송환 관련하여 국정원과 통일부 간 입장 정리가 안되어 오전 중 추가 검토할 예정이다'고도 했다. 송환 직전까지 이어진 부처간 이견 상황을 포함해 이 사안에 대한 고급 정보가 압축적으로 담긴 것이다. 이 중령은 김 차장에게 '단결!'이라고 군대식 경례도 했다. 김 차장은 육군 참모차장(중장) 출신인데, 이 중령과 현역 시절 어떤 근무연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 예비역 장성은 "일선 부대장이 사실상 지휘 계통을 깨고 직접 보고한 것으로 군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청와대에 정보를 제공하고 잘 보이려고 한 것 아니겠느냐"며 "보고 체계 문란이자 기강 해이"라고 했다.
JSA에서 근무하는 한국군이라면 지휘체계상 통상 유엔군사령부(한미연합사)의 지휘를 받는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 예비역 장성은 "통상 한국군이라도 JSA에 근무하는 군인은 유엔사를 통해 상황을 보고한다"며 "김유근 차장이 현장 군인에게 직접 보고를 받은 점은 통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김 차장은 대통령의 안보 참모이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사무처장)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법에 따르면, NSC 사무처는 관계부처에 자료의 제출과 그 밖의 필요한 사항에 관해 협조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예비역 육군대장은 "그렇더라도 청와대 상황실 멤버나 국방부·군의 유관 담당자가 아닌 현장 지휘관으로부터 장관도 모르는 내용을 직접 보고받는 것은 군의 지휘 체계를 흔든다는 논란이 일 수 있다"고 했다.
김 차장은 지난 6월 삼척 목선 입항 귀순 사건 때도 청와대의 지나친 간섭과 개입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목선 입항 귀순 브리핑 축소 은폐 의혹이 일었을 때 김 차장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었다. 청와대는 당시 김 차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엄중 경고' 처분을 받았다. 작년에는 청와대 행정관이 군 인사 관련 설명을 듣겠다며 육군참모총장을 외부에서 만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한 예비역 장성은 "김 차장은 현역 시절 야전 경험이 많다보니 의욕적으로 한다는 게 월권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군의 지휘·보고 체계가 무너지도록 한 것은 청와대 책임", "인사권을 휘두르는 청와대에 군이 예속되는 현상이 위험한 수준"이라고도 했다. 한 야당 국회 정보위원도 "김 차장이 JSA 중령에게 사적인 보고를 받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군은 당초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이동식 발사 능력에 대해 "이동식 발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3성 장군인 국방정보본부장이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장에서 "북이 ICBM을 이동식 발사대로 발사 가능한 수준"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기술적으로 이동식발사대(TEL)에서 발사하기 어렵다"고 하자 이후 국방정보본부장은 "이동식 발사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군사 비전문가 청와대 안보실장 말에 따라가 말을 맞춘 것이다. 하지만 서훈 국정원장은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발사대를 거치해도) 결국 이동식"이라면서 이 문제에 관한 최근 청와대·군의 말들과는 다른 정보 판단을 의원들에게 밝혔다.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근 청와대·군의 말들에 대해 '입이 떡 벌어지는 거짓말(jaw droppingly false)' '완벽한 헛소리(absolute bullshit)'라는 말이 나왔다.
정경두(왼쪽) 국방장관이 지난 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잠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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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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