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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찔끔 줄어든 ‘갑질’… 영세기업은 되레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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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100일 / 직장인 39% “변화 있었다” 응답 / 갑질지수 30.5점… 1년새 4.5점 ↓ /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 관행 여전 / 회식 강요·폭언·성추행 등은 개선 / 민간대기업·공공기관만 효과 봐

세계일보

지난 5월 중순 한 중소기업 관리업무직으로 입사한 A씨는 입사 3개월 만에 해고당했다. 해고통지서에는 ‘업무 미숙’으로 적혀있었으나 사실상 A씨가 상사에게 당한 ‘갑질’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 계기였다. 입사 이후 A씨는 줄곧 폭언에 시달려왔다. 대표이사에게 초과근무수당과 관련한 문제를 거론했다가 ‘다른 직원들을 선동한다’, ‘분위기를 안 좋게 조장한다’며 장시간 폭언을 들은 후 대표이사의 눈엣가시가 됐다. 이후에도 대표이사는 A씨가 연차를 쓰려고 하면 이를 막았다. 그는 연차 사용 이유를 물어보며 “혹시 (다른회사) 면접이냐. 어차피 너는 면접 봐도 떨어질 것이다.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고 영어도 못하는 게 어떻게 붙겠냐”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23일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으로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00일을 맞은 가운데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직장갑질지수가 지난해 평균 35.0점(100점 만점)에서 30.5점으로 소폭 개선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직장갑질지수는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불합리한 처우를 지표로 나눈 뒤 숫자화한 것으로, 0점에 가까울수록 직장갑질이 적고 점수가 높을수록 갑질이 심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 조사는 전국 19∼55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지난 8일부터 15일까지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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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는 모욕감을 주는 언행이나 회식문화는 개선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임금체불이나 휴게시설 미비, 연차사용 어려움 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가장 많이 개선된 항목은 ‘다른 사람들 앞이나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는 언행’으로 지난해 42.0점에서 29.9점으로 줄어들었다. 이어 ‘회사에서 원치 않는 회식문화 강요’(40.2점→30.3점), ‘상사의 폭언·협박’(33.8점→23.6점), ‘성희롱이나 성추행’(26.3점→17.9점) 부문에서 갑질 지수가 크게 개선됐다. 반면 지난해와 비교해 갑질이 전혀 줄지 않은 항목은 ‘쉴 수 있는 공간·시설이 없음’(44.0점→43.8점), ‘뒷담화’(29.2점→28.7점), ‘시간 외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지급’(45.9점→45.0점) 등이었다.

이어 ‘임금, 고용형태 등 취업정보 사이트 채용정보가 실제와 다르거나 면접에서 제시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음’(43.5점),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음’(39.6점), ‘임금 및 노동조건이 직원 동의 없이 불이익하게 변경됨’(38.6점) 순으로 갑질지수가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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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9.2%가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으나 60.8%는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민간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올해 갑질지수는 각각 30.6점과 26.0점으로 지수가 낮아진 반면 민간 중소영세기업은 갑질 지수가 지난해 28.4점에서 올해 31.4점으로 되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 119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법 시행 인지도가 높고, 취업규칙이 바뀐 민간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직장갑질이 유의미하게 감소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실태 점검 및 제도적지원, 법시행 홍보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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