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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조용헌 살롱] [1216] 虛業의 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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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JP는 명언을 남겼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필자는 JP의 허업을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하나는 정치라는 게 매일매일은 역동적이고 뭔가 세상을 바꾸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결과적으로는 허망한 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따지면 인생사 허망하지 않은 일이 없지만, 특히 정치가 더욱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허(虛)의 의미를 도가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도가(道家)에서는 허를 숭상한다. 수레바퀴의 가운데가 둥그렇게 비어 있어야만 바큇살을 수십 개 꿸 수 있다는 비유도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표현이 모두 ‘허(虛)’를 말하고 있다. 골프채를 잡을 때에도 ‘힘 빼라’는 이야기를 코치에게 듣고, 기타를 배울 때도 ‘힘 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힘이 잘 빠지는 게 아니다. 힘을 빼고 무심한 듯한 상태로 있는 허를 몸으로 체득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가의 허를 들먹이는 것은 '조국 사태' 때문이다. 법무장관을 그만둔다고 발표한 뒤 불과 20분 만에 서울대 법대 교수 복직 신청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렇게 가벼울 수가! 한두 달 좀 있다가 하지! 월급 때문인가? 아니면 복안이 있어서인가? 하여튼 현실적 손해는 절대 안 보겠다는 철저한 계산이 느껴진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손해를 잘 안 본다. 그러나 대권까지 염두에 두었던 인물치고는 너무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간이역에서 좀 쉬었다가 가는 것도 괜찮다. 허업의 미학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까지 교수 생활도 할 만큼 했고 먹고살 만큼 돈도 펀드에 있으니 이제 교수직 던져 버리고 초야에서 좀 은거 생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허허롭게 말이다.

조국을 보면 실속만 있지 허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국 옆에는 장자방도 없고 도사도 없나. 이럴 때 ‘어디 산속 암자나 수도원에 가서 몇 달이라도 좀 쉬었다 오자’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오로지 자기 머리에서 나오는 형법적 계산으로만 이 세상이 움직인다고 보는 것인가.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는 말도 있다. ‘꾀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군데 파 놓는다’는 뜻이다. 인생사 여차하면 좀 튈 데가 있어야 한다. 김해에 있는 신어산(神魚山·630m)에 몇 달 가 있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가야국의 장유화상(長遊和尙)이 머물렀던 성산이다. 아차! 검찰 수사가 남아 있나.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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