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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분만실 없는 지자체들, 정부가 설치비 준대도 '신청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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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기초단체 "지원 받아도 의사·간호사 구하기 불가능"

복지부, 신청지역 한 곳도 없자 분만 산부인과 설치 예산 삭감

조선일보

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기 어려운 기초자치단체를 뜻하는 '분만 취약지'가 전국적으로 32곳에 달하지만, 이 중 단 한 곳도 분만 산부인과 설립을 지원하는 정부 예산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산부인과 분만실을 세우면 정부가 설치비와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데도 신청하는 곳이 없는 것이다. 내년 예산안에선 산부인과 설치 지원 비용이 아예 제외됐다.

분만 취약지 지자체들은 "정부 지원 받아봐야 분만실 야간 당직까지 돌릴 만큼의 의사, 간호사 인력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분만실은 24시간 운영이 원칙이어서 의료진이 많이 필요하지만, 최근 저출산에 낮은 분만 수가, 의료사고 위험 등으로 젊은 의사들의 산부인과 전공의 기피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1명 밑인 0.98로 떨어졌다.

분만 산부인과 설립 지원 예산 사라져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분만 취약지 관련 예산 규모는 73억원으로 올해(69억2500만원)보다 늘었다. 분만실이 남아 있는 지역 산부인과에 인력·시설 등 운영비를 지원하는 규모가 45억원에서 10억원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만 산부인과 설치 지원 예산(6억원)은 통째로 빠졌다. 예산을 받겠다는 지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신생아 출산 자체가 줄어드니까 민간 의료기관이 분만 취약지에서 분만실을 운영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며 "대신 유일하게 남은 산부인과 분만실이 문을 닫아버리면 분만 취약지로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지자체 3곳에 분만실 운영비를 선제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설치·운영비 절반 준다는데도 신청 제로

정부는 저출산으로 산부인과 분만실 폐쇄가 잇따르자 2011년부터 분만 취약지를 지정, 산부인과 설치·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복지부가 분만실 설치 비용 절반(약 6억원)과 운영비 절반(2억5000만원)을 매년 지원하면 나머지는 지자체가 부담하는 식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지자체들의 지원 미달로 사업이 난항을 겪었다. 분만 취약지 2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편성된 예산(약 13억원)의 절반은 상반기 중 강원 철원군에 지원됐다. 하지만 나머지 1곳을 구하지 못하다가 10월쯤 경북 영천시를 겨우 찾았다. 복지부는 올해는 1곳만 지원하는 것으로 사업 규모를 줄였는데, 10월 말이 되도록 신청하는 곳이 없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산부인과는 응급 혈액이 많이 필요한데 취약지에선 혈액을 구하기가 더 어렵다"며 "의료사고가 나면 책임은 의사 본인 몫이라 의사들도 기피한다"고 말했다.

[허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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