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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미군 철수 안 했다면, 쿠르드족의 슬픈 운명은 끝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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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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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부터 시작된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이 5일간의 휴전이 선포되며 한 국면을 지났습니다.

터키로 급파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17일 만나, 터키군이 공세를 5일간 중단하는 동안 미군이 쿠르드족을 시리아 북동부에서 철수시키겠다고 합의한 거죠. 터키는 이번 작전에서 시리아 국경 안쪽 30㎞까지의 안전지대 설치를 목표로 내걸었죠. 그 밖으로 쿠르드족을 내보내는 데 미국이 협력하겠다는 것입니다. 터키는 원하던 것을 다 얻은 셈입니다. 국제뉴스팀에서 중동 문제를 오래 다뤄온 정의길입니다.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시리아 철군을 전격적으로 선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트럼프는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통화를 했고, 그 직후 터키가 쿠르드족 공격 작전을 밝혔죠. 이 때문에 트럼프는 터키의 공격을 묵인했고, 이슬람국가(IS) 격퇴의 주역으로 삼았던 동맹인 쿠르드족을 ‘토사구팽’했다는 비난이 비등합니다. 하지만 쿠르드족이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먼저, 미국에 터키와 쿠르드족이 갖는 전략적 비중입니다. 취임 이후 동맹체제를 훼손해왔다는 트럼프가 아니라 어떤 미국 대통령이라도 터키와 쿠르드족 중 터키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트럼프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잘못이나 이 문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터키는 미국 세계패권의 주축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중요 회원국으로 냉전시대 이후 소련을 봉쇄하는 등 전략적, 지정학적 가치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슬람권인 중동에서 미국이 군사기지를 2차대전 직후부터 운용해온 나라이고, 최근 트럼프가 누설한 것처럼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에는 미국의 핵무기도 배치됐습니다. 이 기지는 미군이 중동으로 전개하는 군사작전이 발진되는 주요 기지입니다. 터키는 미국에는 중동뿐만 아니라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가름하는 국가이지요.

트럼프 취임 이후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였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와 이슬람주의 색채에다가 강력한 터키 민족주의자인 에르도안은 사사건건 충돌했습니다. 터키 내 미국 목사 구금 문제로 트럼프는 터키에 경제제재를 가해 터키의 리라화가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순종적이었던 과거의 군사정권과는 달리 에르도안은 미국에 굴하기는커녕 러시아, 이란과의 관계를 확대했습니다. 터키는 특히 최근 러시아 방공망인 S-400을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입했습니다. 나토의 방어체계에 구멍이 날 수 있는 일이죠.

미국은 반미국가 이란과 충돌하는 상황에서 터키와의 관계도 악화된다면 거의 지정학적 재앙에 처하게 됩니다. 터키-이란-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벨트가 무너지는 상황이죠. 아프간에서는 미군이 곧 철수하고, 탈레반이 복귀할 예정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 벨트까지 치고 내려와 중동의 핵심이 중·러의 영향권에 포섭될 수 있다는 의미죠.

또 약 3천만명에 이르는 쿠르드족의 존재는 이들이 흩어져 있는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는 모두 중대한 ‘안보 위협’입니다. 쿠르드족이 추진하는 분리독립은 이들 나라의 영토 보전성을 깨는 것으로,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라크 전쟁으로 자치정부를 꾸린 이라크 쿠르드족이 2018년 말 주민투표를 통해 분리독립을 선언했다가 호된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라크 정부는 이란과 터키의 지원을 받고는 쿠르드족 지역으로 침공해 그들 자치정부 영토의 40%를 점령하고, 자치정부의 기능과 권력을 대폭 삭감했습니다. 네 나라는 쿠르드족 문제에서만은 이해가 일치합니다.

터키의 침공이 임박하자 쿠르드족은 러시아를 통해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부군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쿠르드족을 탄압하던 아사드 정부는 쿠르드족이 관할하던 영토의 3분의 1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인데 마다할 리 없지요. 쿠르드족은 다시 시리아 정부의 통제 속에 들어가고, 터키 역시 이를 묵인할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과 시리아 내전으로 중동의 핵심지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한때 이슬람국가가 창궐했다가 사그라들면서 시리아 쿠르드족도 부흥을 맞는가 싶었습니다. 이는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세력 균형의 파괴에 이은 세력 공백 때문이었습니다. 쿠르드족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없었고 오히려 희생양이 된 것이죠. ‘비정한 국제정치의 현실’ 혹은 ‘예고된 사태’라는 언론의 상투적 표현밖에 쓸 수 없는 현실이 저로서는 더 안타까울 뿐이네요.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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