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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창조적 일탈’로 체제에 균열 낸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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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학의 판도 바꾼 유르착의 인류학적 ‘후기 사회주의’ 연구

‘일상사’ 통해 고착된 담론이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진 과정 탐구



한겨레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
알렉세이 유르착 지음, 김수환 옮김/문학과지성사·3만2000원

“소비에트연방에서 무언가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게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고사하고요. (…) 모든 게 영원할 거라는 완전한 인상이 있었죠.” 러시아의 유명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안드레이 마카레비치가 1994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후일 출판된 회고록에서 그는 수백만의 다른 소비에트 시민처럼 그 역시 영원한 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다고 썼다. 많은 다른 이들도 유사한 경험을 증언했는데, 그건 소비에트 시스템이 변함없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버렸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카레비치와 많은 소비에트 인민들은 또 하나의 특이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시스템의 붕괴는 그것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막상 그것이 실현되자 놀랍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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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출간돼 소비에트 연구의 판도를 뒤바꾼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은 “사라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영원했던” 역설을 추동한 독특한 역학을 해명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로 국가사회주의의 본질에 한발짝 다가간 역작이다. 이 책은 2007년 슬라브동유럽유라시아학회(ASEEES)에서 주는 최고 저작상을 받았고, 슬라보이 지제크도 “나는 유르착의 이 책이 후기 소비에트 시기를 다룬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역사책이 아니라 진짜 문학작품을 읽는 것 같은 만족감을 준다”고 극찬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 책은 195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스탈린 시대 이후 흐루쇼프에서 브레즈네프 시기까지 지은이가 ‘후기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30년가량의 기간을 대상으로 한다. 유르착이 수차례 러시아를 오가며 수집한 개인 기록물과 인터뷰, 공식 출판물, 방송 등 광범위한 인류학적 자료에선, 이 시대에 젊은 시기를 보낸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가 다른 어떤 세대보다 이 시대의 역설을 강렬하게 체험했음이 드러난다. 유르착 본인은 ‘소비에트 마지막 세대’에 속하였지만, 그로부터도 한 발짝 떨어진 경계인이기도 했다. 이는 1960년 러시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9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언어 및 문화 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버클리대학교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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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비에트 시민을 보는 관점의 기저엔 ‘억압 대 저항’ 등으로 나뉘는 이원론적 시각이 깔려 있었다. 이런 시각에서 시민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공산주의를 따르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강요 때문에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은밀하게 다른 생각을 품은 ‘마스크를 쓴 행위자’로만 그려졌다. 이런 해석은 소비에트 시민들을 주체성 없는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유르착은 이런 해석에 반대하면서, ‘수행적 전환’이라는 새로운 해석 모델을 내놓는다. 그는 존 오스틴의 화행이론을 확장한 이 모델로 담론의 진술적 차원과 함께 수행적 차원의 함의까지도 포착한다. 예를 들어, 콤소몰(공산주의청년동맹) 집회 같은 회합이 진행될 때 참가자는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해도 된다. 하지만 투표가 시작되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들어올려야 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투표라는 행위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여전히 아주 중요했다. 이런 제의적 투표 절차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다른 중요한 사건들과 실천들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소비에트인으로 재생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서구 록음악 마니아의 삶과 공식적 삶을 모순 없이 결합하는 콤소몰 간부, 사람들이 상부 기관의 권위를 문제삼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교사를 속이고 수업을 ‘땡땡이’치는 콤소몰 위원 학생들 등 지배 시스템의 한복판에서 그것을 비껴가며 미세한 균열을 내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일상의 실천들을 보여준다. 이 모든 사례를 관통하는 유르착의 핵심적인 통찰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일탈의 전술들이 공식 담론에 반하거나 그 바깥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나란히 또는 그 안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있다. 이는 그간 포스트소비에트 사회연구의 단골 주제였던 노스탤지어 현상을 더는 현대 러시아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에 생겨난 퇴행적 반응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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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라는 담론의 주인이 사라진 후기 소비에트 시대에는 무엇이 이데올로기적 언어의 ‘규범’을 구성하는지가 점점 더 불명확해졌고, 그 어떤 새로운 텍스트도 잠재적인 탈선으로 읽힐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당서기 연설문 같은 텍스트들은 규범에서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복제하기 시작했다. 담론이 지나치게 고착화되고 예측 가능해져버린 것이다. 권위적 담론의 진술적 의미와 형식 사이의 연결이 더 많이 끊어질수록 담론은 절대적 의미로부터 자유로워져 새로운 해석을 향해 열렸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의미 있고 창조적인 삶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결국 페레스트로이카의 변화가 시작되고 권위적 담론의 수행적 재생산이 더는 불가능해졌을 때, 그것이 수반했던 창조적 재전유 또한 불가능해졌고, 이런 담론의 조건변화는 한 체제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것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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