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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매경의 창] 국민은 단봉낙타, 정치는 쌍봉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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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의정치(代議政治)하에서 정치권은 국민을 대변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대의정치가 파탄 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은 스스로를 대변하며 국민에겐 흑백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국민을 두 극단으로 가르는 몰상식과 반이성은 그 끝이 안 보인다. 진보와 보수, 촛불과 태극기, 서초역과 광화문, "이게 나라냐"와 "이건 나라냐"의 비생산적 극한 대립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쌍봉낙타 등에 솟은 두 개 봉우리처럼, 정치권이 앞장서 공통분모 없는 두 개 진영 쌓기에 나서고 있다. 말려야 할 언론도 이런 편가르기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자연현상이든 사회현상이든 양끝의 극단보다는 중앙의 몸통이 두꺼운 게 보편적이다. 보다 많은 자료가 중앙에 위치해 하나의 봉우리로 쌓여 가고 그 중앙으로부터 벗어나 변두리로 갈수록 자료의 수가 점차 줄어든다. 그리하여 봉우리가 두 개인 쌍봉보다는 봉우리가 하나인 단봉이 일반적 현상이다. 통계학 분야에서 잘 알려진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도 단봉이다.

우리 국민의 정치 성향 역시 굳이 일직선상에 표시해 본다면 그 분포 역시 단봉일 게다. 지나치게 좌나 우로 치우친 사람보다는 중앙에 위치한 사람이 많다. 좌든 우든 중앙으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그러한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용지도(中庸之道)는 소신 없는 회색인 변절자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중앙에 위치해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우리 국민과 달리 정치권은 중앙을 비운 채 양쪽으로 갈라져 쌍봉으로 대치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다. 쌍봉낙타의 두 개 봉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 단봉낙타의 봉우리와 그 위치가 겹치지 않는다. 진정한 대의정치라면 정치권의 색채가 국민의 색채와 겹쳐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쌍봉으로 갈라선 정치권은 단봉을 이루는 다수의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학 분야에 중위투표자정리(median voter theorem)란 게 있다. 선거에서 극단적 포지션을 취하는 후보자보다는 중앙의 포지션을 취하는 후보자가, 가운데 몰려 있는 다수의 유권자 마음을 얻는 데 유리하다는 것이다. 좌는 한 발짝 우 클릭하고, 우는 한 발짝 좌 클릭하는 게 선거 전략상 유리하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정치권의 쌍봉 현상을 보면 중위투표자정리는 실종된 것 같다. 극단적인 정책을 들고나오는 정치인은 해당 극단에 위치한 자기 진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반면, 진영에서 벗어나 한 발짝이라도 중앙으로 움직였다가는 변절자로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대다수 국민에게 묻는다면 극단적 색채의 후보자보다는 중앙에 위치한 후보자가 국민의 선택을 받겠지만 우리 정치권에서 그런 중앙의 후보자는 진영별로 치러지는 예선전을 통과할 수 없다.

정치권발 국론 분열을 막아야 할 언론조차 아쉽게도 둘로 나뉘어 있다. 언론도 한쪽 극단을 취하는 게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는 것보다 자기 진영으로부터 주목을 받기 쉽다. 우리 대부분은 회색인인데 정치든 언론이든 흑백의 선택을 요구한다. 학계, 과학계, 종교계, 심지어 일상의 대화조차 하나의 봉우리가 둘로 갈라져 쌍봉낙타의 등처럼 되어 가고 있다. 어느덧 정치권과 언론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중산층이 사라져 가는 소득분포 내지 봄가을은 짧아지며 독한 여름과 겨울만 길어지는 자연 현상을 닮아 가고 있다. 2019년 가을, 겹치는 봉우리가 없는 단봉낙타와 쌍봉낙타의 괴리는 대의정치가 실종된 우리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재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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