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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가습기살균제 피고인 "재판장 바꿔달라… 남편이 진상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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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 중 7명이 기피 신청, 법원은 "재판에 문제없다"

SK케미칼, 애경산업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혐의로 기소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기업 관계자 등 13명의 피고인 중 7명이 "재판장을 바꿔달라"며 법원에 기피 신청을 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절반에 가까운 피고인이 특정 판사를 지목해 재판부 교체 요청을 한 것은 드문 일이다.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가습기 살균제 관련 기업 관계자 13명의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일 안모 전 애경산업 대표가 "정 부장판사에게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법원에 신청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0일 홍모 전 SK케미칼 대표 등에 이르기까지 총 7명이 법원에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다. 사법시험 수석 출신인 정 부장판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을 맡아 징역 15년을 선고한 판사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으면 피고인은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피고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정 부장판사 남편인 황필규 변호사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 진상 조사를 위해 설립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이라는 점이다. 한 피고인의 변호인은 "남편은 명백히 피해자 측에 서 있고, 아내는 가해자를 재판하는 구도는 어떻게 봐도 불공정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실제 제일 먼저 기피 신청을 한 안 전 대표의 경우 지난 8월 특조위가 서울시청에서 실시한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당시 청문위원인 황 변호사는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다 사과가 아니다"라며 안 전 대표를 비롯해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 관계자들을 질타했다. 6일 뒤 안 전 대표는 자신의 재판에 나와 이번에는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안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청문회에서 남편에게 혼나고, 법정에서는 그 아내에게 재판을 받는 셈이다.

황 변호사도 부부가 동시에 가습기 살균제 관련 진상 조사를 하고 재판하는 점이 불공정하게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법원에 이를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소송법에는 법관 스스로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고 생각되면 배당받은 재판을 회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법원과 정 부장판사는 "부부 사이지만 공정한 재판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며 그대로 재판을 진행해 왔다. 법원은 별도 재판부를 선정해 정 부장판사가 이 재판을 계속 맡는 것이 적절한지 판단할 예정이다.

[박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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