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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공감세상] 조국 오웰 2019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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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원영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너덧명이 두패로 갈라져 적대감 가득 안고 논쟁을 벌이는 중이라고 해보자. 노골적인 욕설이나 폭력만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방귀를 뀌고 만다. 지독하다. 논쟁 중에 누군가 말한다. “일단, 이거 나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여기서 웃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집단이 싸움의 끝에 서로를 마침내 제거하거나 영원히 보지 않을 사이는 안 되리라는 믿음을 가져도 좋다. 이 집단에는 지금 ‘창문’이 열려 있다.

어떤 농담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을 때, 한 사람이 말한다. “저… 나는 당신들의 농담에 (이런저런 이유에서) 커다란 수치심을 느낍니다.” 순간 (시쳇말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데, 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창문이 열린 것이다. 10명이 웃는 가운데 한명이 질식해 죽지 않는 공동체일 것이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창문이 없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신념을 품은 사람들로 이뤄진 민주적인 공동체도 그럴 수 있다. 이런 사회는 말한다. “지금 방귀 냄새가 중요해? 저 녀석들이 하는 말이 우리 사회 적폐의 근원이라고!” 이런 사회는 특정한 농담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는 문제 제기가 열어젖힌 창문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잘 알겠는데, 우선 당장은 우리가 연대해야 하니까 분위기를 깨지 맙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은 주인공 카(K)가 평범한 날 아침 갑자기 찾아온 남자들에게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남자들은 아무리 물어도 체포의 이유도 말해주지 않는다. 소설 내내 카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기 위해 분투하지만 거대한 법의 질서는 그를 점점 몰아가 결국 사형시킨다. 이 소설은 인간 개개인을 초월한 관료적 힘과 질서가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섬뜩하게 보여주는데, 중간중간 생뚱맞게 분위기를 바꾸는 묘사들(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한 소녀의 모습, 엉뚱한 성교 장면 등)이 등장한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이 ‘시적인’ 부분들이 이 소설의 창문이라고 강조한다. 이 창문들은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압도적이고 거대한 힘 가운데서 문득 모습을 드러내는 개인의 자유, 고유성, 독창성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반면 쿤데라는 ‘창문’ 없는 소설의 예로 조지 오웰의 대표작 <1984>를 든다. 이 소설은 전체주의 사회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문제작이지만, 소설 전반에 엉뚱한(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하는) 구석이 없는, 소설의 모든 구조와 문장들이 전체주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촘촘히 짜인 정치 팸플릿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소설은 매우 정당한 목표를 가졌음에도 “혐오스러운 사회의 모습을 그 죄악들의 단순한 열거로 축소한다.”

자유한국당은 그야말로 창문 없는 사회를 만든 정치 세력의 적자이지만, 그래도 종종 이은재 의원이 큰 웃음을 준다.(창문을 열어두면 미세먼지도 들어온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여름부터 모두가 이순신 같은 표정을 한 채, 일본과 검찰 권력에 맞선다는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얼굴을 닮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토실토실 토착왜구” “정치검찰 물러나라”를 동요라고 부르는 충격적 영상이 나왔고,(물론 민주당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창문으로 향하던 1276명의 문인들조차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들에게서, 거대한 법질서에 체포되고 끌려다니는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을 대입했던 모양이나,(나도 좀 그렇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정작 <소송> 안에 창문을 만들어 둔 소설가 카프카의 얼굴을 이들에게서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35일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창문 없는 대결은 이제 조금은 환기될까? 아니면 우리는 이 ‘조국대전’의 손익을 계산한 뒤 저 극심하게 폐쇄적인 상대를 제대로 깨부수기 위해 더 극심하게 폐쇄되는 쪽을 택하게 될까. 조국 장관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종종 우리 사회의 창문을 열던 사람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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