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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집값이 수상한 지금, 다시 펼쳐 보는 ‘문 정부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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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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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ㅣ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요즘 집값이 수상하다. 서울 아파트는 매매가와 전세가가 같이 오르고, 거래량도 늘고 있다. 강남 3구의 인기 아파트 매매 가격이 이전 최고가를 넘어섰고, 이런 흐름이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으로 번지고 있다는 뉴스도 나온다. 그렇다고 2020~2021년의 ‘미친 집값’ 현상이 다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주택시장에 여전히 냉기가 감돈다.



하지만 집값은 한번 불이 붙으면 잘 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잘못 다루면 정권이 넘어간다. 국민은 이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는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 2년간 부동산 정책을 다룬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부동산과 정치’라는 책을 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징비록’을 쓴 셈이다. 여기서 그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책을 4가지로 정리했다. 그 각각을 집값이 들썩이는 현재 상황에 비춰 점검해 보자.



김 전 실장이 생각하는 첫 실책은 부동산 대출을 더 강하게 억제하지 못한 것이다. 최근 몇년은 높아진 금리가 집값을 누르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뚜껑이 헐거워졌다. 지금이 바로 정부가 긴장해서 대출 수요를 관리할 때이다. 금리 인하 기대를 반영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최저선이 최근 2% 후반까지 내려왔고, 상반기에만 6조원 이상 풀린 신생아 특례대출 등으로 은행 돈이 부동산 시장에 빠르게 흘러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시행 엿새를 앞두고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란 대출 규제의 확대를 9월로 미룬 것은 집 사고 싶으면 얼른 대출받으라는 신호로 보여 불안하다.



그다음 실책은 공급불안 심리를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한 것이다. 전 정부에서 나온 주택공급 부족론은 부풀려진 측면이 있으나, 수요자들은 불안해했다. 지금은 공급 부족발 집값 상승이 우려되는 실제 상황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최근 올해까지 5년간 누적된 공급 부족량이 86만가구라며 “내년과 후년에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폭등세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중에 질 좋은 주택 27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빈말이었다. 고금리로 집값이 계속 안정될 거라 믿고 공급이 줄어드는 걸 방치했다. 특히 민간이 소극적일 때 공공이 매입임대주택을 확대하는 등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세번째 실책은 부동산 규제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경기에 따라 정책이 냉온탕을 오가니 반발만 커지고 정책이 먹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집값이 숨을 고를 때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 여러 면에서 반대로 갔다. 국회를 우회해 행정 조처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는데,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취득세, 양도세를 가능한 한 낮췄다. 재건축도 ‘대못 뽑기’라며 웬만한 규제는 다 풀어줄 듯이 나왔다. 최근에는 종부세 완전 폐지까지 거론한다. 경기에 따라 정책도 달라져야 하지만 어떤 정책이든 양면이 있다는 걸 잊은 듯하다. 하반기에라도 집값이 급등하면 자기 손으로 없앤 세금을 부활하고, 규제를 재도입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일까?



정책의 리더십이 흔들린 게 네번째 실책이다. 집값 때문에 아우성이 나올 때 정부·여당이 중심을 못 잡고 포퓰리즘으로 흘렀다 했다. 지금이 급등기는 아니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금융, 세제, 공급 등을 챙기고 조율하는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걸 총괄하는 대통령의 부동산 시장 인식이 피상적이어서 집값이 오르기라도 하면 우왕좌왕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 1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종부세를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뜯어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만든 세금이란 인식을 드러냈다. 또 “정부가 무슨 권한과 근거로 재개발·재건축을 막았는지 모르겠다”며 규제만 풀면 도심의 주택공급이 확 늘 것처럼 얘기했다. 모두 정책의 맥락과 사안의 복잡성을 무시한 것이다.



지난 시기의 정책 실패에서 핵심적으로 배울 것은 집값이 그나마 안정돼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후속 정부에서 집값이 오르는 바탕이 됐다. 막상 값이 뛸 때 뭘 해보려 하면 백약이 무효인 경우가 많다. 윤석열 정부는 집값이 조정받은 시기에 집권했다. 이럴 때 긴 호흡으로 앞뒤가 맞고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될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세워야 한다. 집값이 다시 들썩인다니, 실기한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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