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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JAPAN NOW] 개인정보 유출에 취준생들 부글부글-리크루트 구직자 정보 장사…일본이 발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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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일본 최대 취업정보업체 리크루트 주최로 도쿄에서 열린 취업설명회는 썰렁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취업박람회 참가 기업 숫자는 평소에 비해 10%가량 줄었다. 참석 구직자 학생 수는 40% 이상 감소했다.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학생 사이에서도 “취업을 하려니 어쩔 수 없지만 찜찜한 기분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구인 기업이 많고 사람은 적다 보니 구직자가 ‘갑’이 되는 상황이라지만 해당 취업설명회처럼 참석자가 적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 일본 언론 평가다.

8월 일본 언론을 통해 리크루트가 구직자 정보를 구인 기업에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팔았다는 정보는 취업준비생들이 제공한 정보를 재가공해 회사 측에서 계산한 ‘내정사퇴율’. 취직할 곳이 정해진(내정된) 학생 중 1개 이상 내정 취업처에 입사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비율을 뜻한다. 일본 대학생은 보통 3학년부터 취업활동을 하고 4학년 초반에는 입사할 회사가 정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채용은 결정됐지만 실제 입사까지 1년가량 시간이 있다 보니 ‘내정’이란 표현을 쓴다.

일본 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하던 ‘잃어버린 20년’만 해도 내정을 받으면 포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문제가 됐다. 내정을 받고도 취업을 포기하니 기업 입장에서는 필요한 만큼의 채용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8월 기준으로 구직자 1인당 내정 회사 수는 2.3개 사에 달할 정도니 이런 고민이 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점을 파고든 것이 리크루트였다. 1위 업체다 보니 구직자 대부분의 원서 접수 관련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십분 활용했다. 리크루트는 구직자가 몇 개 기업에 지원서를 냈는지 또 이미 받은 내정 통보가 몇 군데나 되는지 등의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특정인의 내정사퇴율을 계산했다. 여러 회사에 지원하거나 다양한 업종에 지원하는 경우에는 내정사퇴율이 높게 평가되는 식이다.

▶내정 취업처에 ‘입사 안 한 확률’ 알려

리루르트는 이 정보를 기업에 팔았다. 사겠다고 계약한 회사는 현재 드러난 곳만 38개 사에 달한다. 토요타, 혼다, 미쓰비시전기 등 일본 주요 대기업이다. 계약금액이 400만~500만엔(약 4500만~5500만원)에 달한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개인정보가 넘겨진 피해자(취업준비생)는 약 8000여명이다. 리크루트에서는 자체적으로 확보한 정보를 재가공했으니 문제가 안 될 것이라 여겼다. 기업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했다는 말에 ‘알아서 했겠지’라며 개인정보 관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렇게 유통된 정보는 실제 채용 과정에 활용됐다.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안이한 기업 인식과 달리 후폭풍은 거셌다.

리크루트는 당장 취업준비생들로부터 강한 비난에 직면했다. 싸늘해진 취업준비생 평가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 썰렁한 9월 취업설명회였다. 언론 보도 후 리크루트 경영진이 나서 머리를 숙이고 재발 방지를 밝혔으나 이미 추락한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정보를 사들인 기업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기업 외에도 고객 정보를 다루는 기업들이 개인정보 관리에 문제가 없다며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일본 정부도 나섰다. 일본 공정위는 “리크루트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며 “규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도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직속으로 ‘디지털 시장 경쟁본부’를 설치했다. 정부 각 부처에 퍼져 있던 정보관리 관련 규정을 통합 정비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기업 의무를 규정한 법안 등도 연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내 개인정보 관리에 관한 기업들 보안 의식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개인정보 관리는 글로벌 IT 공룡 기업의 얘기거나 유럽, 미국의 사례 정도로 여기는 경향도 여전하다. 리크루트 사태는 허술한 개인정보 관리가 새로운 경영 리스크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업에서 다루는 정보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점차 더 복잡한 처리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대응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자문해볼 때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9호 (2019.10.16~2019.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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