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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41)목민심서 ‘형전’ 편 단옥-형사 재판의 3대 원칙은 공평·공정·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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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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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최근 정부는 특수부 축소, 파견 검사 복귀, 검사장 전용 차량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 조치를 시작으로 검찰개혁은 앞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개혁이 중요한 일임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검찰개혁과 함께 사법개혁이 제대로 진행돼야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검찰개혁에만 시선이 쏠린 사이 사법개혁은 어느새 관심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사법개혁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법개혁 뜻이 담긴 ‘단옥’

▷재판의 요체는 신중해야

목민심서 ‘형전’ 편 ‘단옥(斷獄)’은 사법개혁과 관련된 내용이 담겼다.

우선 단옥이란 용어의 해석이 필요하다. ‘감옥에 갇힌 죄수에 대해 죄의 유무와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대한 결단(決斷)을 내린다’는 뜻이다. 요즘으로 보면 판결을 내리는 일이다. 이 조항에는 먼저 특별한 다산의 설명이 나와 있다.

“경전에서 논한 바 형벌의 의미와 옛날이나 현재의 인명(人命)에 관계되는 옥사는 그 글들을 수집해 ‘흠흠신서(欽欽新書)’를 만들었으므로 여기서는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논하지 않는다.”

형벌에 관한 기본적인 법의식과 사람의 목숨에 관한 죄악인 살인죄에 대해서는 별도의 전문 서적인 ‘흠흠신서’에 상세히 거론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내용은 생략한다는 뜻이다. 흠흠신서는 ‘경세유표’ ‘목민심서’와 함께 다산의 3대 저서로 꼽히는 책이다.

“단옥, 즉 재판의 요체는 밝게 살피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데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생사가 나 한 사람의 살핌에 달려 있으니 밝게 살피지 않을 수 없으며, 사람의 죽고 사는 일이 나 한 사람의 생각에 달려 있으니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산은 고경(古經)의 원칙을 끌어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주역’에는 “밝게 살피고 신중하게 생각해서 형벌을 집행해, 죄수를 오래도록 옥에 갇혀 있게 해서는 안 된다(明愼用刑 而不留獄)”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다산은 “재판의 요체는 밝게 살피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데 있을 뿐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밝게 살피기만 하고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뜻밖의 판결에 억울함이 많을 것이요, 신중하게 생각하기만 하고 밝게 살피지 못하면 일이 지체돼 결단하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다산은 그 유명한 제갈공명의 재판에 대한 지혜를 소상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옥사를 결단하고 형벌을 줄 때에는 공평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라. 그대가 옥사를 다룰 때, 그가 오고 가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거동을 살피고 그 말소리를 듣고 시선을 보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고 말소리는 슬프며 오는 것은 빠르고 가는 것은 더디며 뒤돌아보며 한숨을 짓는 것은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니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요, 고개를 숙이고 훔쳐보거나 곁눈질하면서 뒷걸음치거나 헐떡거리며 몰래 듣거나 중얼거리며 속마음으로 계산하거나 말에 조리를 잃거나 오는 것은 더디고 가는 것은 빠르거나 감히 뒤돌아보지 못하는 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의 말씨나 얼굴, 행동거지는 죄를 지은 사람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재판관은 그런 피의자의 모습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내용이다. 눈의 시선, 얼굴 모습, 두려워하는 태도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반드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관찰력이 뛰어나고 사리 판단에 밝은 사람이 재판 업무에 관여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시대마다 명수사관이나 명재판관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법의 적용이나 판례에 따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밝게 살피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일에 명민해야만 죄인의 태도 여하로도 죄의 유무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어서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재판의 진정한 목적은

▷죄와 벌을 통해 국민을 교화

재판에 대한 다산의 생각은 남다르다. 반드시 형벌을 내리겠다는 목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살피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남의 목숨과 인격을 말살해서라도 재판관 자신의 명예만 유지하기 위한 재판도 곤란하다. 재산의 정도에 따라 죄의 유무를 가리는 이른바 ‘무전유죄 유전무죄(無錢有罪 有錢無罪)’의 판결이 있다면 천벌을 받는다는 경고를 내렸다.

다산은 늘 공정하고 공평한 재판을 요구했다. 또 어떤 인물이 유능하고 현명한 재판관인지 상세히 설명한다.

“지극히 원통한 일을 당해 하늘에 호소해도 응답이 없으며, 땅에 호소해도 응답이 없으며, 부모에게 호소해도 역시 응답이 없는데, 홀연히 한 재판관이 나타나 옥안(獄案·재판기록)을 조사하고 그 뿌리를 밝혀내 죄 없는 보통 사람으로 풀어내준 뒤라야 형관(刑官·판사나 검사)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재판관이나 수사관이 공명심 때문에 가혹한 판결이나 수사를 진행하는 것을 다산은 경계했다.

“큰 옥사가 만연해 억울한 사람이 열에 아홉이나 될 것이니, 자기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구해주고 석방해줄 것이다. 덕을 심고 복을 맞이하는 것에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어떤 경우라도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산은 중국 당나라 때의 은사(隱士) 피일휴라는 사람의 글을 인용해 공명심 때문에 재판을 그르치는 예를 열거했다.

“옛날의 재판은 그 죄인의 진상을 파악하고는 슬퍼했는데, 오늘날에는 재판에서 그 죄인의 진상을 파악하고는 기뻐한다. 슬퍼하는 것은 교화가 행해지지 못함을 슬퍼하는 것이요, 기뻐하는 것은 훌륭한 재판관이라고 포상을 받을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공로를 인정받을 것만 생각하는 재판관의 어리석은 생각을 비판한 내용이다. 죄와 벌을 통해 국민을 교화하고 민심을 순화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상을 받기만 바라는 재판관 행태를 꼬집고 있다.

“(반란 같은 일이 있더라도) 그 수괴는 목을 베고 그 연좌된 사람들은 관대하게 처리해야 억울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는 주장에도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집단 난동이나 폭동을 일으킨 경우에는 반드시 수괴에게 큰 책임을 묻고 부화뇌동한 종범에게는 관대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다.

독재시대 집단 항의나 조직적 항쟁의 경우, 샅샅이 구속시켜 모두에게 벌을 주던 폭압적인 정치와 사뭇 다른 태도다.

증거가 불분명하고 뚜렷한 증인이 없어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의옥(疑獄·의심스러운 옥사)의 처리에 대해서도 다산은 명확하게 설명했다.

“의심스러운 옥사는 밝히기 어려운 것이니, 평반(平反·증거와 증인이 불확실한 경우 가벼운 쪽으로 결론을 내림)에 힘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이요, 덕의 바탕이다(疑獄難明 平反爲務 天下之善事也 德之基也).”

재판관이 죄인의 죄를 밝히지 못한다면 선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증거나 증인이 없어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오래도록 감옥에 두는 일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범죄 행위를 밝혀낼 방법이 없다면 풀어주는 것은 당연하다. 인권을 중시하는 다산의 법의식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요즘에도 재판을 지연하고 사건을 계속 미루는 일이 잦다. 특히 형사사건에서 신속한 재판을 강조한 다산의 뜻은 참으로 선진적인 법의식이다. 공평하고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을 요구했던 다산의 뜻이 오늘날 재판에도 스며들기를 기대해본다.

매경이코노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8호 (2019.10.09~2019.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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