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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사법통계로 본 경제위기①] 민사편 : 소송은 늘었지만, 변호사 선임할 돈 없어 ‘나홀로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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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조국 사태’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 순간에도 한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알리는 각종 경제지표가 발표되고 있다. 사실 이는 국내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당장 내년부터 세계적으로도 본격적인 ‘D의 공포’가 시작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내년 한국 경제는 이러한 대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이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으며, 국민들의 삶은 그 만큼 피폐해져 가고 있다는 점은 언뜻 경제와는 무관할 것 같은 사법 관련 통계를 통해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번 편에서는 그 중 ‘민사’와 관련한 통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 전체 민사사건 수는 늘었지만, ‘본안사건’수는 줄고 ‘독촉사건’수는 늘었다.

이른바 ‘민사사건’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법적 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제가 어려울수록 그 건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행항 201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사건 수는 2009년 4,135,591건, 2010년 4,236,740건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다 2018년 4,750,505건을 기록하였다. 이는 2009년 대비 14.9%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본안소송’ 건수는 2009년 1,133,537건, 2018년 1,037,397건으로 2009년 대비 9%가량이 줄어든 반면, ‘독촉사건’건수는 2009년 983,619건에서 2018년 1,507,600건으로 2009년 대비 53.3%가량이 늘었다는 것이다.

‘본안소송’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식소송으로 법적 소양이 없는 일반인은 혼자서 법정에 나가 주장과 입증을 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대개는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더라도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결국 ‘본안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법률전문가에게 적잖은 수임료 내지는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경제난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당사자들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 대 개인의 분쟁, 즉 ‘민사사건’건수가 늘었음에도 ‘본안소송’건수가 줄었다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법률전문가에게 소송을 의뢰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같은 시기 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난 ‘독촉사건’은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금전 등의 지급을 청구할 목적으로 제기하는 간이한 재판절차(민사소송법 제462조 이하)로,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당사자, 법정대리인, 청구의 취지와 원인 등을 소정의 양식에 맞추어 법원에 제출하면 채무자가 이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는 한(제468조), 별도의 심문절차를 거치지 않고도(제467조) 판결을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만약 채무자가 이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한다면 해당 사건은 ‘본안소송’으로 넘어가게 되지만, 그 이전까지는 채무자가 법원에 납부해야 할 소송비용, 인지대, 송달료 등도 ‘본안소송’에 비해 훨씬 저렴할 뿐 아니라, ‘본안소송’과 같은 엄정한 주장과 입증 없이도 법원이 손쉽게 지급명령 결정을 내어주기에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도 적다. 이렇듯 경제적 위기로 소송은 해야 하지만 경제적 형편상 ‘본안소송’을 할 수 없는 당사자들은 분쟁의 성격상 명백히 ‘독촉사건’으로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우선적으로 ‘독촉사건’으로 분쟁을 해결해 소송비용도 아끼고 법률전문가에게 지불해야 할 수임료 또는 수수료도 줄여보자는 심사로 ‘독촉절차’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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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해석으로는 소송대상 자체가 워낙에 소액이라 ‘본안소송’으로 진행할 경우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발생해 ‘독촉사건’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독촉절차’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사안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가령 소액에 해당하는 100만원을 갚지 않는 상대방에게 ‘본안소송’으로 소송을 할 경우 인지액 5,000원, 송달료 96,000원에 법무사 보수표 기준 400,000원 합계 501,000원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과 달리 ‘독촉사건’으로 소송을 할 경우에는 ‘독촉절차’를 자신이 진행하는 것을 전제로 인지액 1,000 원, 송달료 : 57,600 원 합계 58,600원의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즉, 금액이 소액인 사건은 ‘본안소송’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독촉사건’으로 진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고 실제로도 ‘독촉절차’는 소액인 사건에서 주로 많이 이용되는 절차인 만큼 ‘독촉사건’수의 증가는 적은 돈을 갚지 않는, 혹은 갚을 처지가 안 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한번 시작한 소송은 끝장을 본다.

이번 통계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특징은 일단 시작한 소송은 ‘끝장을 보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비교적 소액인 사건에서 확연한데, 고액 사건을 담당하는 항소심 고등법원 사건의 경우에는 2009년 약 18,000건대였었다가 2018년 12,000건대로 크게 줄어든 반면, 소액, 중액 사건을 담당하는 항소심 지방법원 사건은 2009년 30,000건대이던 것이 45,000건대로 크게 늘었다. 대법원의 판단을 받는 상고심 역시 2009년 10,000건대에서 2018년 19,000건대로 급증하였다. 경제적으로 팍팍한 삶은 개개인의 삶에서 타협과 관용이라는 마음의 여유까지 빼앗아 소송을 분쟁의 해결이 아닌 개인의 원한을 해소하는 장으로 삼는 사람이 그 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재판을 모두 마친 후에 이루어지는 집행건수의 증가로도 이어지는데, 2009년 699,411건이던 집행사건은 2018년 1,064,189건으로 늘어 약 52.2%의 신장세를 보였다.

지난 10년간, 특히 최근에 더욱 눈에 띄게 어려워진 경제는 개인 대 개인 간의 소송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송은 늘고 변호사 수도 늘었지만, 변호사 선임할 돈이 없어 ‘나홀로 소송’을 하면서도 한 번 시작한 소송은 상대방과 끝장을 봐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 경제위기에 빠진, 혹은 보다 본격적인 경제위기를 앞둔 2019년 대한민국의 민사법정의 모습인 것이다.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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