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천경자의 누드 모델도 서슴지 않았던 ‘며느리 모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큰며느리 유인숙씨 ‘미완의 환상여행’ 책 발간

‘예술가 시어머니’와의 일상 담담히 추억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양화에 가까운 채색 한국화로 독자적인 화풍을 일군 한국화단의 이단아,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절 미국으로 멕시코로 타히티로 스케치여행을 다녔던 자유로운 예술가. 남편 없이 네 아이를 키운 싱글맘, 말년의 오랜 투병, 그리고 사후에도 위작 스캔들로 평화를 누리지 못한 사람. 천경자(1924~2015).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신비로운 여성들은 비록 모델을 썼을지라도 천경자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에 가깝다고 한다. 모델과 그림 모두 작가의 분신이었기 때문인지, 그의 모델은 대부분 딸 등 작가의 혈육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천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알라만다의 그늘 1,2> <황금의 비> <환상여행> <황혼의 통곡>의 모델이 첫째 며느리인 사실이 새롭게 알려졌다.

한겨레

결혼 첫해인 1979년부터 1998년 천 작가가 미국으로 이주하기까지 곁에서 일상을 함께했던 큰며느리 유인숙씨는 새책 <미완의 환상여행>(이봄)을 통해 ‘예술가 시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그는 시어머니와 살뜰한 관계였지만 목욕을 함께 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피해 목욕탕에 가는 시간대도 다르게 했을 뿐 아니라 집에서 좀 멀어도 아예 다른 목욕탕을 다녔다고 한다. 한 집에 살면서 나름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방도였던 듯하다. 그러나 그는 시어머니의 모델을 섰고 때로는 누드 모델도 마다하지 않았다.

커피를 가져다 드리고 나오려는데 어머니가 부르셨다 . “ 인숙아 ” 어머니는 내 얼굴을 바라보셨다 . “ 거기 서 볼래 ?” 나는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서 있었다 . 그날부터 나는 어머니의 모델이 되었다 .

처음으로 모델을 섰던 작품은 < 황금의 비 > 였는데 크기가 작은 그림이지만 어머니는 2 년에 걸쳐 혼신을 다해 그리셨다 . 작품이 완성된 후에는 오랜 세월 항상 거실 벽에 걸어 놓으셨다 . 어머니는 내게 “ 사람들이 저 그림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더라 ” 라고도 하셨다 .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 어머니가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 예사롭지 않은 눈빛 ’ 으로 표현하신 거라고 . 처음 모델을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땐 설다 . 나는 그때까지 어머니가 어려웠고 조심스러웠다 . 모델을 하면서 어머니와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다 . 걱정도 또한 있었다 . 그림 모델을 하다가 어렵게 쌓아놓은 고부 관계가 망가질까봐 염려가 되었다 . (본문 97쪽)



천 작가는 <노오란 산책길>이란 그림을 그릴 때 ‘며느리 모델’에게 자신이 입던 홈드레스를 입혀 놓고 그렸고, 수많은 꽃송이 가운데 여자가 서 있는 <알라만다의 그늘 1>을 그릴 때엔 남대문시장에 함께 가서 매우 많은 꽃을 사왔다고 한다.

어느날 천 작가는 며느리에게 누드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인숙씨는 대학에서 그림 공부를 했기 때문에 누드 모델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 여태까지 어머니 모델을 해왔으니 누드 모델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을 벗고 어머니 앞에서 장시간 동안 여러 자세를 취했다.

유인숙씨는 ‘화가와 모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긴장감을 이렇게 행간에 표현했다.

어머니와 같은 목욕탕을 다니지 않으려고 했던 내가 어머니의 누드 모델이 되었다 . 그렇지만 그후로도 나는 어머니와 목욕탕을 같이 다니지는 않았다 . (본문 103쪽)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