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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권영민의사색의창]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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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환경운동가 툰베리 연설 / 기성세대들에 기후변화 경고 / 청소년 세대의 진정성·절박함 /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어요. 죽어가는 생태계는 회복 불능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멸의 위기에 접어들고 있는데, 여기 와 계신 여러분은 돈 이야기와 항구적인 경제 발전에 대한 동화 같은 이야기만 나누고 있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세계일보

권영민 문학평론가 미국 버클리대 겸임교수


스웨덴에서 건너온 열여섯 살의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얼마 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해 쏟아낸 연설의 한 대목이다. 툰베리는 유엔 총회의 연설을 위해 대서양을 태양광 요트로 건넜다. 어린 소녀의 몸이었지만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비행기보다 배로 이동하기로 했던 것이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미 유명 인사가 돼버린 10대 환경운동가 앞에서 그녀가 내뱉는 호된 질책을 그대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을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뜨거운 장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툰베리의 목소리는 연설하는 동안 사뭇 격앙돼 있었고 그 진정어린 연설은 3분 동안 이어졌다.

“저는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대서양 건너편의 학교로 돌아가야 해요. 여러분은 저의 꿈을 앗아갔고, 여러분의 공허한 말과 함께 제 어린 시절까지 모두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젊은 세대를 위한 희망을 운운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나는 일인지, 저는 여러분을 믿고 싶지 않아요. 여러분은 지금의 상황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툰베리는 지금 당장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않을 경우 미래 세대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소녀가 “이 모든 것이 잘못됐어요”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눈물까지 보였을 때 강연장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졌다. 그녀는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 세대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더 이상 실망시키는 쪽으로 가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연을 끝냈다.

툰베리가 주장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지구적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지적해 왔다. 지나친 탄소 배출이 야기한 대기 오존층의 파괴와 지구 기온의 상승 문제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 빙하가 빠르게 녹아 없어지면서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고 불규칙적인 폭염과 혹한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더구나 기후변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나타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툰베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환경운동의 선도자가 된 것은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영화 속에서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 멕시코 땅덩어리만큼 어마어마한 쓰레기더미가 떠다니는 것을 보고 놀랐던 이 소녀는 그때부터 자기네 집안의 생활방식을 모두 바꾸었다. 그러고는 2018년 8월 스웨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그녀는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에 나가는 대신에 국회의사당 앞에서 스웨덴 당국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 앞장서서 실천해가는 툰베리의 활동은 ‘타임’지 커버스토리로 소개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툰베리가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라는 팻말을 들고 금요일마다 스톡홀름의 의사당 앞에서 벌인 시위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다. 세계의 청소년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툰베리가 보여주고 있는 자발적이면서 실천적인 이 새로운 환경운동이 세계의 젊은이들을 자극하면서 확산되자 이제는 ‘그레타 툰베리 효과’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됐다.

툰베리의 활동은 청소년 세대가 자신들이 누리게 될 미래의 삶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새롭다. 특히 닥쳐올 기후변화의 위기를 놓고 그 책임을 기성세대에게 호되게 따지고 있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 총회에 참석했던 전 세계의 지도자들도 툰베리의 주장에서 볼 수 있는 그 진정성과 절박함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엔 회원국들은 모두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는 파리기후협약의 취지에 동의했다. 앞으로 30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기후변화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을 내놓은 나라가 어디에도 없다. 서로가 남의 핑계를 대고 눈치를 보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방치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핑계대며 파리기후협약에서 아예 발을 빼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의 외침에 귀를 막을 수는 없다. 세계 각국의 청소년이 기후변화 문제에 공감하고 함께 투쟁 대열에 나서는 저 놀라운 ‘그레타 툰베리 효과’와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행진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권영민 문학평론가 미국 버클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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