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만 무성하던 '아리랑' 가수
1929년 펴낸 '조선영화소곡집'서 가수 유경이씨로 처음 밝혀져
'아리랑' 악보·사진도 함께 발견
항일 정신 담아낸 무성 영화
무대서 직접 부른 '아리랑' 듣고 극장 관객들 목 놓아 울기도
단성사가 1929년 4월 발간한 '조선영화소곡집'에 실린 가수 유경이의 사진(왼쪽)과 '조선영화소곡집' 표지(가운데), 영화 주제가 '아리랑'의 악보와 가사. 가수 유경이 사진 밑엔 '스테이지에서 노래한 분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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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리랑'이 개봉한 건 1926년 10월 1일이다. 항일 정신을 주제로 그린 데다, 표현 기법까지 예술적이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조선일보에 '대담한 촬영술! 조선 영화 사상 신기록! 촬영 3개월간! 제작비용 1만5천원 돌파!'라는 광고가 실렸고, 전국 극장 앞엔 이 영화를 보려는 이들로 인파가 북적였다.
마지막 장면이 특히 화제였다. 광인(狂人)이 돼버린 주인공 영진이 누이를 겁탈하려던 일제 경찰의 앞잡이 기호를 낫을 휘둘러 죽이고선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데, 이때 변사가 영진의 대사를 이렇게 읊었다. "여러분, 울지 마십시오. 이 몸이 삼천리강산에 태어났기에 미쳤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지금 이곳을 떠나려는 이 영진은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갱생의 길을 가는 것이오니 여러분 눈물을 거두어주십시오…!" 그리고 울려 퍼진 것이 유경이가 부른 '아리랑'이다. 당시 극장에서는 유경이의 '아리랑'을 듣고 많은 관객이 목 놓아 울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일보 1929년 11월 26일 자에 '요사이 모든 사람의 입으로 아리랑을 성히 부르게 되는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울리여 나오는 조선 사람의 혼에 소리임이 틀림없다'는 글이 실렸을 정도다. 안종화가 쓴 '한국영화측면비사'에도 비슷한 설명이 등장한다. '라스트 신에서 주인공 영진이 정신을 회복하고 손에 수갑을 채인 채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며 불러대는 주제가 '아리랑'에 모든 관객은 나라 없는 백성의 설움과 서글픔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영진과 더불어 뜨거운 눈물을 흘린 것이다.'
정점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유경이의 이후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영화가 인기를 끌자 나중에 '아리랑'의 독립음반이 나왔으나 이 레코드를 만들 때 노래를 부른 이는 가수 김연실이었다. 지방 상영 때에는 가수 없이 변사가 직접 노래를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는 "영화에 '아리랑'이 9~11번 정도 등장하는데, 마지막 대목에선 모든 관객이 합창했다고 전해진다. 유경이가 부르는 '아리랑'을 들으며 모든 관객은 일종의 민족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체험을 했던 것 아니겠느냐"면서 "한국 영화 100년을 맞이한 올해에 의미 있는 자료가 발굴됐다"고 말했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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