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 [上] 윤성희 '상냥한 사람'과 최수철 '독의 꽃'
2019년 동인문학상 최종심 후보로 최수철·윤성희·구병모·박상영이 선정됐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최근 본심을 열고 지난해 12월부터 매월 독회를 통해 뽑은 신간 소설 20편 중 '독의 꽃'(최수철), '상냥한 사람'(윤성희), '단 하나의 문장'(구병모), '대도시의 사랑법'(박상영)을 10월 12일에 열릴 최종심 후보작으로 정했다. 최종심 후보 작가의 말을 두 차례로 나눠 소개한다.
최수철의 '독의 꽃'은 독극물 탐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에서 악이 지닌 의미를 해부한 장편소설이다. 심사위원회는 "독을 악으로 규정해 독의 정화(淨化)를 그리지만 인간 사회에서 완벽한 악의 정화는 불가능하므로 악을 끌어안고 꽃피우자는 게 작가의 생각"이라고 평했다. 윤성희의 '상냥한 사람'은 아역 배우로 한때 유명했다가 평범하게 성장해 중년에 접어든 남자의 추억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의 사소한 일상까지 끌어모아 '무수한 별처럼 작고 희미한 삶들'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심사위원회는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허투루 지나간 게 하나도 없이 '삶은 디테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고 평했다.
[작가의 말] 윤성희
"주머니에 매일 넣고 다닌 사람… 생각날 때면 꺼내어 수다 떨었죠"
오래전에 제목을 정해놓았다. 상냥한 사람. 뭐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제목의 소설을 쓰겠다고. '기특한 아이'가 '시시한 중년'이 되어 가는 이야기가 될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더 이상 명료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상냥한 사람을 오랫동안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생각날 때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지작거렸다. 길거리에서 어떤 풍경을 보았을 때, 지하철에서 어떤 이야기를 엿들었을 때, 책을 읽다 내 마음을 흔들어놓는 문장들을 읽었을 때 그때마다 상냥한 사람을 꺼내보았다.
주인공과 수다를 떠는 기분으로 몇 년을 보냈다. 그 기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러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산책을 하곤 했다.
어떤 날은 길에 버려진 운동화 한짝도, 금이 간 담벼락도, 고지서가 쌓인 편지함도 이야기가 되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마흔 살이었던 남자는 점점 나이가 들었다. 남자는 사고로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딸과의 관계에도 실패를 했다. 슬픔 말고 이 남자에게는 무엇이 남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삶을 위해 애쓰는 남자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작가의 말] 최수철
"각기 다른 毒으로 가득찬 세상… 꽃으로나마 끌어안고 싶었어요"
'독의 꽃'은 한마디로 우리 삶에서 '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쓰인 소설이다. '독의 꽃'이라는 말은 식물에서 동물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을 가진 모든 개체는 각기 독을 품은 한 송이 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누구나 생존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적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수단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꽃들 각각의 존재론적 의미와 그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소설에서는 독에 대한 많은 양의 구체적인 정보가 활용되었다. 그런데 독에 대해 말하다 보니 자연히 약에 대한 이야기로 귀착되었다. '독'이냐 '약'이냐 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상응하는 미묘한 관계가 이 소설의 중심 주제가 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독은 약일 수 있고 또한 약은 독일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서 실존적이고 윤리적인 균형을 잡는 게 아닐까 한다. 또한 작품의 구성에서는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임으로써 심리소설과 추리소설 그리고 연애소설의 형식도 동시에 취하고자 했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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