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일어나 쌀을 씻으러 부엌으로 나가면서 흠칫 놀라 주섬주섬 카디건을 걸쳤다. 간밤에 창문을 닫고 잤는데도 집안이 서늘했다. 더위를 많이 타서 옷 껴입기 싫어하는 아이도 아침저녁 기온이 뚝 떨어진 이번 주부턴 군소리 없이 점퍼를 챙겨 입고 등교하기 시작했다. 주말 동안 큰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더니 여름이 훌쩍 떠밀려 가는 느낌이다.
올해 여름은 지난해보다 덜 더워서 비교적 살만했다는 게 중론이다. 사람들이 더위 차이를 체감한 정도는 수치로도 입증됐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데이터에 따르면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전국 평균 기온은 올해 21.3도로 지난해 22.2도보다 낮았다. 7월과 8월 전국 평균 기온도 올해 각각 24.8도, 26.2도로 지난해 26.8도, 27.3도보다 눈에 띄게 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올해 오존주의보 발령 횟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여름철에 농도가 올라가는 오존은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을수록 많이 생성된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전국에 발령된 오존주의보는 총 489회로, 2017년 276회보다 훨씬 많았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작년 최악의 폭염을 오존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달 초까지 오존주의보가 벌써 499회 발령돼 이미 지난해 총 발령 횟수를 넘어섰다. 특히 우리 집이 있는 경기 지역(인천 제외) 오존주의보 발령 횟수는 지난해 총 77회였는데, 올해 벌써 83회를 기록하고 있다. 기온이 상승할수록 오존 농도도 높아진다는 통념이 깨진 것이다.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난 이유에 대해 아직 전문가들도 정확한 분석을 내놓진 못했다.
과학계 한편에선 오존과 미세먼지의 연관성을 주목한다. 오존은 질소산화물과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햇빛을 받아 광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지는 최종 산물 중 하나다. 질소산화물과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미세먼지의 원료이기도 하다. 대기 중에 특정 조건이 만들어지면 이들 원료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미세먼지가 생성된다. 올 봄 ‘최악의 미세먼지’ 때문에 식구들 마스크를 몇 박스씩 주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세먼지를 만들어낸 원료들이 오존 농도까지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이유다.
최근 일부 과학자들은 오존과 미세먼지의 발생원인을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질소산화물과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대도시의 자동차 배기가스나 산업단지의 굴뚝에서 나오는 공해 물질이라고만 여겼지만, 이들이 산림이나 농지에서도 다량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화학비료를 뿌려놓은 농지에 강한 햇빛이 비치면 비료 속 화학성분이 분해되면서 질소산화물이 생긴다. 또 비료 성분의 상당 부분은 암모니아 계열의 화학물질이라 쉽게 휘발돼 나온다. 자동차와 공장이 적은 해안가나 농촌 지역에서까지 미세먼지와 오존이 측정되는 게 이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도시의 공해나 중국의 영향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국내에서 미세먼지와 오존의 원인 물질이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면밀하게 따져서 대책을 세워야 실질적인 저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존은 자극성과 산화력이 강한 기체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눈과 코처럼 외부 자극을 끊임 없이 받아들이는 예민한 감각기관은 오존에 쉽게 자극을 받는다. 호흡을 통해 몸 속으로 들어온 오존은 기도나 폐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 신체 활동이 많고 체내 기관이 덜 발달한 아이들은 어른보다 오존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오존주의보 발령 기준(시간당 0.12ppm)과 유사한 0.1ppm 농도의 오존에 30분 노출되면 눈에 자극을 받고 두통을 느끼며, 1시간 노출되면 시각장애 위험이 생기고 폐의 산소 확산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가을이 다가오니 엄마들 사이에선 마스크를 준비해 놓아야겠다는 얘기가 오간다. 입자 형태인 미세먼지는 마스크를 써서 조금이나마 걸러낼 수 있지만, 가스인 오존은 고농도일 때도 실외 활동을 자제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어책이 없다. 아이는 교내 체육대회와 학교 대항 축구대회, 도내 육상대회 등 ‘운동장 행사’가 줄줄이 이어질 가을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른이 호흡으로 들이마시는 공기가 하루에 약 1만리터라고 하니, 운동장을 내달리는 아이들은 이보다 더 많은 공기를 마시는 셈이다. 걱정거리 하나 더 얹어놓고 지나가는 여름이 야속하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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