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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독선과 아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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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한수 Books팀장


어느 신간 띠지에 '권력에 눈먼 통치자들은 한 나라를 어떻게 망치는가'라고 적힌 글귀를 보았습니다. 책 앞면에는 '다른 모든 과학은 진보하는데 왜? 정치만은 옛날 그대로일까?'라고 썼네요. 뒷면에는 '정부의 죄악과 독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은 국민들의 불행을 다룬 경고의 책'이란 문구를 넣었고요.

퓰리처상을 두 차례 받은 작가 바버라 터크먼(1912~1989)이 1984년 낸 책입니다. 원제는 '바보들의 행진: 트로이부터 베트남까지(The March of Folly: From Troy To Vietnam)'. 번역서 제목은 '독선과 아집의 역사'(자작나무)로 달았네요.

35년 전 나온 책을 굳이 이 시기에 번역 출간하면서 이런 문구를 집어넣은 이유는 뭘까요.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지요. 지금 정치가 옛날 그대로의 정치이며, 권력에 눈먼 통치자가 나라를 망치고 있고, 독선과 아집이 극에 달했다는 우회적 비판이지요. 옮긴이는 서문에서 "이 책이 실정(失政)의 분석과 해명을 통해 '독선과 아집'의 정치를 바로잡는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썼습니다.

트로이 사람들이 적군의 목마를 성안에 들인 까닭은 승리에 도취한 선동에 이성이 마비된 까닭이었습니다. 숱한 경고에도 베트남 전쟁을 일찍 끝내지 못한 이유는 확증 편향을 갖고서 기존 결정을 뒤집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고요. 3000년 이상 떨어진 두 사건 사이에도 오만한 통치자의 독선이 낳은 비극적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저자 터크먼은 "독선은 정치구조와 관계없다"면서 "군주정치와 과두정치뿐 아니라 민주정치도 독선을 낳는다"고 일갈합니다.



[이한수 Books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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