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이전으로 대추리 떠나…미군부대 근처 한바퀴 돌며 대추리 추억
10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와2리 이주자 단지에 들어서자 '대추리 평화마을'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이곳은 주한미군기지 확장 이전 계획에 따라 2007년 대추리를 떠나온 이주자 40여가구가 터를 잡은 곳이다.
깨끗한 거리 좌우로 줄지어 선 말끔한 새집이 산뜻한 인상을 풍기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상처투성이다.
수십년간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온 탓에 대추리를 잊지 못해 마을 곳곳에 대추리의 흔적을 곳곳에 남겨 놓았다.
노와리 이주단지인 대추리평화마을 입구 |
마을 입구에는 대추리라는 대형 나무 명판과 함께 장승이 서 있고, 입구 바로 안쪽에 건립된 황새울기념관 간판에는 '대추리앞 들판을 황새울이라 불렀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이주자의 집 명패에는 '대추분교 앞 가게를 운영했다. 무말랭이가 맛있는 집', '이장님이 뚱뚱하다며 돼지라고 놀렸던, ○○가 사는 집' 등의 글귀로 대추리를 추억하기도 했다.
노와리 이주단지 전경 |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들은 고향을 떠나 벌써 열두번째 맞는 추석이지만 여전히 고향이 생각난다고 입을 모은다.
이주자 A(80)씨는 "추석 때 가족들이 모이면 제사 지내고, 산소를 다녀온 뒤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온다"며 "여전히 대추리는 가슴 속에 고향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고향을 떠나지 않으려고 끝까지 투쟁하던 그때가 꿈에 나온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난다"며 "미군은 물론이고 나라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사그라지지 않는다"고 먹먹한 속내를 드러냈다.
또 다른 이주자 B(80)씨는 "대추리에서 태어나, 거기서 시집가고, 아이들 낳고 농사지으면서 살았다"며 "지금은 소일거리도 없어 마을회관에서 고향 사람들 만나 같이 밥해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12년이 됐지만, 이주자들은 인터뷰 내내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가슴을 치면서 대추리를 그리워했다.
이들은 같이 이주해 온 이웃들이 이제 하나둘 고령으로 곁을 떠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이주자 C(83)씨는 "이주단지에 살던 이웃이 저세상 가고 나면 그 집을 외지인이 사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벌써 10명 가까이 돌아가셨고 집주인이 바뀌면서 이제 원래 이웃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명패에 적힌 대추리의 기억 |
고향마을에 대한 그리움에 노와리 이주자들은 최근 수년간 행정구역상 명칭을 기존 '노와리'가 아닌 '대추리'로 변경해 줄 것을 평택시와 정부에 요구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래 거주하고 있던 노와리 주민들의 반대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입장 때문이다.
결국 행정소송까지 벌였지만, 법원은 행정구역 명칭 변경이 지자체 고유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어서 주민들은 법규상 신청권이 없는 데다, 주민 투표를 통한 동의도 얻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주자 D(82)씨는 "노와리 이주단지에 사는 대추리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이라며 "그러다 보니 다른 이주단지 사람들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훨씬 큰 것 같다"고 전했다.
goal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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