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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청소년 퀴어들, ‘무지개 도움닫기’ 준비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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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성소수자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

2014년 설립 뒤 5년 동안

전국 퀴어 청소년 상담해온

‘띵동’의 무지개 도움닫기

청소년 상담사·교사 대상으로

십대 성소수자 이해 교육 진행

“동료 시민의 ‘다름’을 이해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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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기자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 활동가들을 심층 인터뷰한 뒤 그곳에서 상근하는 활동가의 위치가 되어 쓴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서울에 있는 병원 가서 치료받으라는데요? 치료하면 이성애자가 되는 거예요?” “아빠가 ‘정상인’ 될 때까지 밥을 못 먹게 한다며 때리고 굶기고 있어요.” “지방은 몇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아우팅에 대한 두려움도 커요.”

띵동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해 열어놓은 상담 창구인 카카오톡 아이디(ID) ‘띵동119’에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질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때가 1990년이다. 30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성소수자 전환치료’의 미개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활동가로서 힘이 빠지기도 한다. 전환치료는 개인의 성적 지향을 동성애나 양성애에서 이성애로 ‘전환’한다고 주장하는 ‘치료법’으로, 주요 학계에서 사이비 과학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학협회는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거나 성 정체성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은 의학적·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동성애 전환치료에 앞장섰던 로버트 스피처 박사도 2012년에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한 뒤 사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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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찾아가는 ‘무지개 도움닫기’

2014년 띵동 설립 뒤 5년 동안 참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났다. 한데 늘 아쉬웠던 건, 띵동이 서울에 있어서 ‘비서울’ 지역의 십대 성소수자들이 호소하는 고립감을 모두 껴안아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카카오톡과 누리집 등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지원을 해오고 있는데, 누적 1257건의 상담 중 630건이 비서울 지역 청소년 성소수자였다. 이들 모두 성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막막함, 막연한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숨죽여 우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고교 1학년인 청소년 성소수자 ㄱ은 내게 말했다.

ㄱ이 학교 상담사나 지역 상담센터를 찾아도 돌아오는 건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이성애자) 돌아올 거야”라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만나게 될 분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주자!’

우리의 이 생각을 구체적인 기획으로 확장해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3년 동안 ‘무지개 도움닫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을 지원하고 싶은 상담기관 선생님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연락하고 공문, 포스터도 보냈다. 호의적인 기관도 있었고, 반응이 없는 곳도 있었다.

올해 9월 기준으로 대구, 수원, 인천에서 ‘무지개 도움닫기’ ‘움직이는 띵동식당’(이하 띵동식당)을 열었다. 띵동식당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긍심과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밥상모임이다. 띵동식당을 열 때마다 10명 안팎의 청소년들이 꾸준히 찾아온다. 처음에는 긴장하며 들어왔다가, 우리 활동가들의 얼굴을 보고 나면 이내 활짝 웃는 아이들. 함께 밥을 먹으며 그동안 털어놓을 수 없던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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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항상 고민해

무지개 도움닫기를 통해 대구와 수원, 인천에서 만난 상담사 선생님, 예비 교사들의 고민은 비슷했다. 자신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날지 모르는데, 그때 제대로 상담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어 막막하다는 것이다.

지난 8월30일 무지개 도움닫기 인천편에서 만난 한 상담사는 “트랜스젠더 학생 두 명과 만나고 있다. 아직 미성년자인 그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상담·지원을 하고 싶다”며 “띵동에서 나눠준 워크북과 강의를 접해보니 훨씬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활동가로서 뿌듯한 일이다.

무지개 도움닫기를 통해 찾아가는 교육뿐 아니라 전국 17개 시도에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목표다. 현재로선 서울에 있는 띵동이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로서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지만, 이 사업을 통해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관계망을 만들어두면 상담가와 해당 청소년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민석 대표와 송지은 변호사(상담지원팀장), 민지희 활동가(상담지원팀) 등 띵동 구성원들과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무지개 도움닫기를 통해 올해 6개 시·도를 찾아가고, 2020년과 2021년까지 전국 17개 시·도를 모두 방문해, 비서울 지역에 최소 한 곳 이상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 네트워크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만약 네트워킹이 되면 띵동은 그 네트워크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워크북이나 교육자료 등을 계속 제공할 예정이다.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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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크북으로 ‘무지개 파워’ 뿜뿜!

띵동식당을 통해서는 비서울 지역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난다. 학교 안팎은 물론 교사와 부모에게서 듣는 차별·혐오 표현에 마음을 다친 친구들이 많다.

이때 우리 띵동 활동가들과 만든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침해에 대처하는 무지개파워-나를 지키는 워크북’(이하 워크북)을 함께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과 차별, 그냥 참고만 있기는 싫을 때 학생인권조례가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특히 띵동에서 만든 워크북은 아우팅, 혐오표현,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등 이슈에 관해 참여형으로 활용할 수 있고 부록으로는 청소년 성소수자 권리장전, 다양한 감정단어 카드 등이 있어 세미나에 도움을 준다. 십대들의 경우 가정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가정폭력에는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 등이 있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고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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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서울, 경기도, 광주광역시, 전라북도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라면 학교 내에서 교사나 학생들이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해 피해를 입은 경우 ‘학생인권침해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서울의 경우 학생인권조례 제5조(차별받지 않을 권리) 3항에 ‘학교의 설립자, 경영자, 학교의 장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은 제1항에서 예시한 사유를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지 않거나, 학생이 아닌 경우에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면 법과 제도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특히 일터나 경찰서 등 공공기관에서 차별당한 경우에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진정을 제기할 수 있다.

부디 띵동의 무지개 도움닫기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관계자들이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으면 좋겠다. 탈가정하거나 마음 둘 곳 없는 그들의 진로·진학·취업·의료 및 법률 지원에 도움을 주는 ‘퀴어 생태계’도 무지갯빛으로 조성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제는 의례적으로 지원해왔던 기존 청소년 상담·복지의 경계를 확장해 모든 청소년들을 차별 없이 보듬어야 할 때가 아닐까. 어른들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내치지 않고, 곁에 함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도움말: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대표(인권재단사람 사무처장), 송지은 변호사(상담지원팀장), 민지희(상담지원팀) 활동가 / 사진: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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