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보고서 발간… 전국 국수에 얽힌 이야기 조사
고려땐 잔칫날 대접하는 음식, 6·25 이후 일상서 즐기기 시작
국수가 가장 발달한 곳은 경상도… 전라도는 팥칼국수 즐겨 먹어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에 이렇게 적었다. 사신이 고려 경내로 들어오면 식사를 제공했는데 "이때 음식은 10여 종으로 면식(麵食)을 우선하는데 해물은 더욱 진기하였다"고 했다. 국수와 관련해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이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 국수와 밀면'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국수를 통해 근현대 식생활 변화상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1년간 전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 고유의 국수와 이에 얽힌 이야기를 조사·기록했다.
◇고려 때 국수는 귀한 잔치 음식
한국인은 언제부터 국수를 먹기 시작했을까. 손정수 학예연구원은 "백제시대 군사 식량을 보관하던 부여 쌍북리 군창지(軍倉址)에서 밀이 쌀, 보리와 함께 가장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이미 밀을 활용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국의 국수는 각 지역 고유의 식재료와 생활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했다. 사진 왼쪽부터 제주 골막식당의 고기국수, 경북 안동 박재숙 농가민박에서 건진국수 면을 써는 모습, 부산 개금밀면의 물밀면. /국립민속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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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에는 "고명한 세 학사가 너의 탕병(湯餠)의 손님이 되었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탕병이 국수다. 아기가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 친척과 친지들이 모여 국수를 먹으면서 축하했다는 뜻이다. 손 연구원은 "고려시대에는 밀가루와 면이 매일 먹는 주식(主食)이 아니라 잔치 같은 특별한 날이나 사신 접대 등 행사에 쓰인 음식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국수를 일상적으로 먹게 된 건 6·25전쟁 이후,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정도에 불과하다. 박물관은 "쌀 생산이 부족했던 시기에 국수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저렴한 식사로 시작해 점차 부식에서 주식과 일상식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국수가 가장 발달한 곳은 경상도
제주 한성국수의 제면 모습. |
국수는 유독 지역색이 강하다. 각 지역 환경에 따라 면 종류와 육수 재료가 다양하게 발달했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에서 국수 소비가 가장 많고 발달한 지역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상도는 국내 건면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만큼 국수 공장이 많이 생겨났다. 지역별 독특한 국수도 발달했는데 포항의 모리국수가 대표적이다. 1967년 처음 모리국수 가게를 차린 이옥순 대표는 "뱃사람들이 고기 잡고 남은 거 국수에 넣어 달라 하기에 아귀, 우럭 넣고 고추장 풀어서 내놨는데 맛있다 카더라. 그때부터 만들어 팔아봤다"고 했다.
쌀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라도는 상대적으로 면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국수 언제 먹여줄래?'(언제 결혼하냐는 뜻)란 말이 전라도에선 통하지 않는다. 황동이 연구원은 "전라도에선 결혼식에서 국수가 아니라 떡국을 대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전라도에선 뜨거운 팥칼국수를 즐겨 먹는다.
◇부산 밀면의 유래
부산에는 밀면 음식점만 500곳이 넘는다. 밀면의 유래는 세 가지 설이 있다. ①6·25전쟁 당시 북한에서 온 피란민들이 냉면을 그리워하다 고안했다는 것 ②함흥 출신 모녀가 부산 우암동에 냉면집을 열면서 밀면이 탄생했다는 설 ③진주 밀국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박물관은 "어떤 이유로 탄생했든 밀면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미군의 밀가루 원조 사업"이라며 "미군의 대규모 밀가루 원조로 6·25전쟁 이전에는 귀한 식재료였던 밀가루가 남아돌게 됐고, 그 밀가루를 활용해 추가로 고구마 전분이나 감자 전분 등을 섞어 쓰는 것이 밀면과 기존 냉면의 차이"라고 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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