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학순 할머니 옆에 손 맞잡은 한국·중국·필리핀 소녀 형상
이용수 할머니 "아흔두 살…아베한테 사죄받기 딱 좋은 나이"
샌프란시스코 교민들 후원으로 제작…일본 등 외신도 큰 관심
'함께 손잡고' |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집에 오는 길 이자불지 말어라."
엄혹한 일제강점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딸에게 돌아오는 길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는 어머니의 절절한 심정을 그린 음악극 '갈 수 없는 고향'과 함께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동상 제막식은 시작했다.
옛 조선신궁터 바로 옆인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광장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 씨를 형상화한 동상이 14일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인물이다. 그 동상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는 한국, 중국, 필리핀 출신 소녀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을 그린 동상이 섰다.
세 소녀 동상의 주인공들은 각자 동, 서, 북쪽을 바라봤고 남쪽은 비었다.
제막식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씨는 동상을 가렸던 하얀 천막의 줄을 잡아당겨 걷은 직후 세 소녀 동상으로 다가가 얼싸안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씨는 기념사에서 "역사의 산증인 이용수"라고 소개하고 "제가 우리 나이로 92살인데 아직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 아베(일본 총리)한테서 사죄받기 딱 좋은 나이"라고 외쳤다.
동상은 2017년 미국 대도시 최초로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현지에서 제작, 서울시에 기증했다.
한인 활동에 앞장섰던 부모의 이름을 따 2012년 재단을 설립한 김한일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다"며 "지금 위안부 할머니 스무 분이 살아 계신다. 아팠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용수 할머니가 항상 더 오래오래 사시면서 저희를 도와주시고 인권 문제에 앞장서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바랐다.
김 대표의 누나인 김순란 재단 이사장은 "2017년 미국 대도시 최초로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웠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며 "서울 기림비 제막을 계기로 다시 한번 자유, 평등,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기를 갈망한다"고 강조했다.
소녀상과 마주한 이용수 할머니 |
제막식에는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건립을 주도했던 미국의 20개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CWJC) 릴리안 싱, 줄리 탕 공동의장도 참석했다.
중국계 판사 출신인 두 의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매우 많은 학살과 만행이 있었다. 중국에서도 2차대전 당시 많은 사람이 난징대학살로 목숨을 잃고 겁탈당했다"며 "우리도 손잡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한국 언론 외에 외신들도 취재차 방문했다. 특히 일본 매체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일본 미디어의 보도에 나오는 엄청난 반일이라든지 이런 것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취재하면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기는 한다"며 "그러나 이런 제막식에 와 있는데 일본 미디어를 방해하는 등의 행동은 없어서 한국분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선신궁 자리에는 원래 조선 시대 신당인 국사당이 있었다. 일제가 이를 철거하고 국가종교시설인 신궁을 세웠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위안부 피해 문제를 더 가까이 접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역사적 장소이자 시민들의 일상 공간인 이곳을 동상 설치 장소로 정했다.
이 일대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잘 알려진 일명 '삼순이 계단'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 등이 있어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적과 지역을 불문하고 기림비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인권의 보편성과 양심에 기초해서 함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소녀상의 빈자리에서 소녀와 손을 잡고 이용수 할머니의 한을 실현하는 일이 가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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