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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中 때리자 美소비자 비명…트럼프, 대선 걱정에 `갈지자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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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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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중 무역정책을 놓고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이 소득 없이 끝나자 지난 1일(현지시간)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다음달부터 10%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중국산 수입품 전량에 대해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셈이다.

그러나 13일 트럼프 정부는 돌연 해당 목록에서 상당수 품목을 추려내 12월 15일로 관세 부과 시점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결정으로 관세가 미뤄진 중국산 제품 규모가 1560억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1600억달러어치로 추산했다. 수입업자들은 관세 부과가 연기된 중국산 제품을 미리 수입해 연말 특수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는 (대중 관세로) 미국에 아무 피해가 없다"면서도 "크리스마스 쇼핑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정부의 '작전상 후퇴'는 미국 대선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고 미국 정부의 관세 수입만 늘린다고 주장해 왔으나 대다수 경제학자와 기업들은 제품 가격 상승으로 결국 미국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존에 25%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25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은 부품·소재가 주를 이뤘다. 이에 비해 9월부터 관세가 적용될 제품군에는 일반소비재가 광범위하게 포함됐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세금재단 분석을 인용해 대중 관세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면 미국 4인 가구가 연평균 350달러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고 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에 대다수 참모들이 반대 의견을 냈던 것도 물가 상승을 우려한 측면이 컸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3% 상승해 지난 5~6월 0.1%를 유지했던 것에 비해 높아졌다.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더 낮추는 데도 부담 요인이 된다.

트럼프 정부는 자칫 중국산 제품에 대한 전면 관세가 경기하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올 2분기 성장률 속보치는 2.1%로 전 분기(3.1%) 대비 1%포인트 하락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무역전쟁 영향으로 올 4분기에는 1.8%까지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여전히 기업 투자가 부진한 데다 반짝 살아났던 소비마저 꺾이면 내년 재선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20세기 이후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윌리엄 태프트, 허버트 후버, 지미 카터, 조지 H W 부시 등의 공통점은 리세션 중에 선거를 치렀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조립해 역수입하는 애플 아이폰이 갖는 상징성도 컸다.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인 아이폰 가격이 대당 70~100달러 상승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했다는 얘기다.

물류기업인 플렉스포트의 필 레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WP와 인터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마스를 훔치는 '그린치(Grinch·만화영화 주인공)'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수출 기회를 잃은 농민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미·중) 갈등을 끝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하지만 목표에 미달하는 거래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도 표시하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딜레마를 꼬집었다. 대선을 의식한 트럼프 대통령의 표 계산이 더해지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은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한편 중국 상무부는 14일 발표한 성명에서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9월 1일부터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트럼프 대통령 발표와 관련해 '엄중한 항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전날 류허 부총리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과 전화 통화를 했다며 양측이 2주 내로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전날 통화에는 대미 강경파로 꼽히는 중산 상무부장과 이강 인민은행장, 닝지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등이 참여했다. 일각에서는 이 행장이 전화 협상에 참여한 것을 두고 최근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조치에 대해 항의성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중국 인민일보는 이날 미국의 관세 부과 방침에 대해 "자국 소비자의 이익을 희생하고 세계 경제 회복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비이성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논평을 통해 "미국이 관세를 연기한 것은 최대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미국도 대화를 통해서만 합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베이징 = 김대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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