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궁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현판 제작방식이 마침내 결정됐다. 문화재위원회는 14일 사적분과회의 심의에서 재복원될 광화문 현판은 “검은색 바탕에 금박동판을 씌운 한문글씨로 하되, 전통안료로 단청한다”고 최종결정했다. 이로써 광화문 현판 제작방식을 둘러싸고 9년간 이어진 논란은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사적분과가 결정한 ‘광화문’ 현판은 나무판에 ‘光化門’ 글씨를 양각으로 새긴 뒤 그 한자의 각 획과 같은 형태의 동판을 덧대어 고정시키고 그 위에 금박을 칠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단청안료는 1년간 점검 끝에 전통안료로 결정했다. 김태영 궁능유적본부 복원정비과 사무관은 “전통안료의 재료적 특성 때문에 황·주홍색의 탈·변색이 현대안료에 비해 두드러지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만큼 전통안료를 쓰는게 옳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광화문 현판 제작방식 논란은 2010년 광복절 광화문 복원에 맞춰 내건 현판이 불과 몇개월만에 균열이 생겼고, 문화재청이 그해 연말 전격적으로 교체를 결정함으로써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1893년)과 지난해말 연구자 김민규씨(동국대강사)가 발굴한 일본 와세다대(早稻田大) 소장 <경복궁 영건일기>에서 중건당시 광화문 현판이 ‘검은 색 바탕’에 ‘금색동판’으로 특별 제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은색 바탕’ 현판을 내건 이유가 ‘화재 방지 때문이었다’는 <경복궁 영건일기>(1865년 4월21일) 내용도 새롭게 밝혀졌다. ‘검은 색’은 음양오행 중 ‘북쪽과 물(水)’을 상징한다. 1865~68년 중건된 경복궁의 모든 전각·전당은 목조건물이어서 화재에 특히 취약했다. 중건을 주도한 흥선대원군(1820~1898)으로서는 풍수상 정면의 관악산 화기를 다스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경복궁 영건일기>에도 “경회루 연못과 관악산 정상의 우물에 ‘물의 신’인 청동용을 제작해 넣었다”는 등의 갖가지 방화대책이 등장한다.
문화재청은 현판재제작위원회와 색상관련 자문위원회 등을 구성, 20여 차례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새로운 자료와 연구결과를 반영해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 동판글씨’를 최종결정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새 현판은 내년 이후 공식 교체될 계획이며 정확한 날짜는 광화문 현판의 상징적인 의미가 부각되는 날로 선정해서 추후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마도 3·1절이나 8·15 광복절이 유력해보인다.
<경복궁 영건일기>를 발굴한 김민규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2010년 복원한 대로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 현판이었다면 심각한 역사왜곡이 될 뻔했다”고 말했다.
최종설치된 광화문 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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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전통안료와 현대안료를 절반씩 나워 복원해본 광화문 현판.|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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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광화문 재복원 때 흰색바탕에 검은 글씨로 제작한 ‘光化門 현판’(왼쪽). 그러나 이후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연구결과가 잇달았고 결국 경복궁 중건 일지인 <경복궁영건일기>의 기록에 따라 ‘검정색 바탕의 동판금색글씨’(오른쪽)로 바뀐다. 오른쪽 사진은 김민규씨가 <경복궁영건일기>를 토대로 복원한 ‘光化門’ 현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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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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