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과거 알 길 없지만, 부디 버려졌다 생각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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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는 과묵한 인상을 지녔지만, ‘투머치토커’ 고양이다. 냉장고 문을 열면, 쪼르르 달려와서 간식 달라며 야옹거리고,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놀아달라며 야옹거린다. 히끄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그중에서도 제일 궁금한 것은 “너는 어디서 왔니?”이다.
5년 전 히끄를 처음 발견했을 때 ‘시골 마을에 흰 고양이라니!’ 싶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이라서 고양이를 키울 만한 집은 없었다. ‘누가 새로 이사 왔나?’하고 잠깐 집을 나왔거나 주인이 있는 외출냥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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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는 지금의 모습과 다르게 사람을 많이 경계했다. 나는 며칠 동안 지켜만 봤다. 히끄는 매일 집 주변을 서성거렸고 사료를 주면 허겁지겁 먹었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귀에는 곰팡이성 피부염이 퍼져 있었고 몸 구석구석 털이 빠져 있었다. 나중에 미용하면서 보니 몸 곳곳에 파인 자국이 있어서 동물병원에 물어보니, 다른 고양이 발톱에 찍힌 흔적이라고 했다. 길 생활을 하면서 다른 길고양이한테 공격당한 흔적 같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외출냥인 줄 알았다가 길고양이인가 했는데, 그 후에도 히끄의 가족으로 보이는 흰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황상 히끄는 유기된 고양이로 보였다. 처음 발견했을 때의 히끄는 안전한 곳에 있다가 내몰린 것처럼 초췌해 보였다. 믹스 품종인 것도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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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는 고양이와 사람을 좋아하는데 유치원 이하 아이를 보면 무서워서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금은 제주 이웃의 아이인 화음이 덕분에 아이들을 좋아하게 됐지만, 몸짓을 크게 하는 아이가 갑자기 다가오면 싫어한다. 과거 히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렇게 착하고 예쁜 고양이를 왜 버렸을까?
유기동물보호센터에 있는 동물들은 어떤 문제가 있어서 버려진 게 아니다. 생명을 물건으로 대하는 사람은, 반품할 때나 쓰는 말인 ‘단순 변심’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렇게 반려동물을 하자 있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정작 문제가 있는 건 버려진 동물이 아닌 버린 사람인데 말이다.
만약에 히끄를 버린 사람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어떤 불가피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 이해하고 싶지 않다. 당신에게 히끄는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히끄는 행복을 알게 해준 유일한 존재다. 어쩌면 이미 기억 속에 잊혀 이 글과 사진을 봐도 한때 당신의 고양이였다는 걸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히끄는 어떤 과거의 히끄보다 행복한 묘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쓰면서 히끄를 처음 발견했을 때 두려움 가득한 눈빛과 앙상했던 몸이 오랜만에 떠올라 눈물이 조금 났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말은 연애에 국한된 말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히끄는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버림받은 게 아니라, 날씨 좋은 날 소풍을 나왔다가 나비를 쫓다 나를 만났다고.
*히끄의 과거를 아는 분은 제보 바랍니다.
이신아 히끄아부지, <히끄네집> 저자 ojori14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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