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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궁금하게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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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박사의 톡팁스-15]

매일경제

허구연 /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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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의 호기심을 유도하라

좋은 야구 해설자는 어떤 사람일까? 경기 승패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 선수들에 관한 사소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사람?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

좋은 야구 해설자에 대한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관중에게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야깃거리라 함은 관중이 야구를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좋은 야구 해설자는 3시간 전후의 긴 야구 경기가 지겹지 않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허구연은 좋은 야구 해설자다. 3시간 전후의 야구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허구연은 계속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허구연이 가진 재능이다.

사실 허구연은 경기 승패를 정확하게 예측하지도 않고, 선수들에 관한 사소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지도 않는다. 또 청취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해박한 야구 지식을 뽐내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허구연의 야구 중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면, 허구연의 야구 해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승패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면 무엇하러 야구 중계를 보겠는가? 승패 예측을 확인하기 위해서 스포츠 하이라이트만 시청하면 된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점술가 수준의 예측을 할 정도라면 굳이 야구단을 만들어서 야구 경기를 해야 할 필요도 없다.

선수들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를 제공하는 해설자도 있다. 어제가 생일이었다는 둥 아침 식사로는 늘 미역국을 먹는다는 둥 이런저런 정보를 털어놓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냥 수다일 뿐이다. 야구 경기에 직접적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야구 기록이나 야구 정보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수도 있다. 물론 야구는 기록 경기이고, 정보 경기이기 때문에 적당한 지식은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이어야 한다. 도를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공해다. 그래서 야구 해설은 쉽지 않다. 야구는 룰도 복잡하고, 선수도 많아서 입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번 야구를 이해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모두 다 해설가 수준이다. 그만큼 자기만의 야구 철학이 생겨나고, 자기만의 야구 분석이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허구연은 시청자가 호기심을 가질 이야기를 던진다. 그리고 자기만의 논리를 가지고 야구 경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허구연의 야구 해설은 퍼즐을 푸는 느낌이 든다.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대야 한다

미국 현지시간 2019년 5월 8일 수요일,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선발투수 류현진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맞붙었다. 정교한 제구를 앞세운 류현진의 호투가 빛났다.

3자 범퇴로 1회 초 투구를 마친 류현진에 이어 1회 말 홈팀 LA 다저스의 공격이 이어졌다. 1대0으로 1점 앞선 가운데 2아웃에 주자 2·3루에서 6번 타자 맥스 먼시 타석이었다.

홈런으로 선취점을 내준 애틀랜타 투수 맥스 프리드. 프리드는 평정심을 잃었다. 그래서 와일드피칭으로 1·2루 주자를 한 누씩 진루시켜 주자 2·3루. 2아웃 3볼2스트라이크 풀카운트 상황이 되었다. 그때 먼시가 흔들리는 투수 프리드의 볼을 받아쳤다. 볼은 2루수 쪽으로 굴러갔는데, 2루수가 볼을 잡았다 놓쳤다. 그사이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 크리스 테일러가 홈으로 쇄도했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세이프.

"저는 테일러 같은 선수를 선호합니다. 지금도 다른 선수 같으면 홈에서 아웃되는 타이밍이거든요. 2사 후라서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와야 하는 상황인데, 2루수 댄스비 스완슨이 공을 놓쳤지만, 홈 송구가 비교적 정확했거든요. 그러면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는 판단을 잘해야 하거든요. 포수를 돌아서 피해서 굉장히 좋은 슬라이딩을 했습니다."

류현진 중계방송이므로 당연히 다저스 위주의 편파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허구연의 해설은 다저스 타자들 득점 상황에 대한 칭찬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구연은 공치사를 남발하지 않고 칭찬하기 위한 근거를 댄다.

확실히 테일러는 뛰어난 홈 승부를 보여줬다. 2루수 스완슨은 2바운드로 홈 송구를 했다. 타이밍상으로는 분명 아웃이었다. 심지어 애틀랜타 포수는 홈이 아니라 3루 쪽 라인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대로 달려왔으면 틀림없이 아웃이었다.

그런데 절묘한 홈 쇄도 동작으로 테일러는 세이프였다. 허구연은 그것을 지적했다.

테일러는 애틀랜타 포수가 포구 후에 홈으로 쇄도하는 자신을 태그하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돌릴 때 자신도 같은 방향으로 몸을 따라 돌렸다. 그러자 애틀랜타 포수는 축족인 왼발의 한계로 인해 몸을 더 돌릴 수 없었다.

그때 테일러는 애틀랜타 포수 등 뒤로 미끄러지듯 쇄도해서 홈을 손으로 태그했다. 놀라운 순발력이었다. 허구연은 늘 짧은 시간에 이야깃거리를 찾아낸다.

◆계속 듣게 만들어야 한다.

허구연 해설이 독특한 것은 이력 때문이다. 'KBO 특별기획 야구를 말하다'의 '허구연 편'을 보면 독특한 이력이 소개된다. 허구연 해설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상업은행에 처음 갔다가 1년 있다가 대학으로 갔거든요. 그건 왜 그러냐면 상업은행에 또 친구하고 같이 갔어야 했어요. 그런 게 있었어요. 누구누구 가야 받아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갔다가 이건 아니고 공부를 해야 되겠다. 그래서 대학은 다시 간 거예요. 반대를 무릅쓰고. 왜냐하면 뭐 난리 났죠, 은행에서. 하도 은행에서 잡아서 예비고사를 못 쳤어요, 잡으니깐. 예비고사를 쳐야 대학을 가잖아요. 예비고사를 안치면, 합격을 안 하면 체육학과밖에 못 갔어요. 그래서 체육과에 들어간 거예요."

지방 명문 경남고 출신으로 고려대 4번 타자였던 허구연은 공부 욕심이 퍽 강했다. 고려대에 입학했지만 체육과라는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1년 뒤 다시 예비고사를 치러서 법대로 재입학한 것이다. 특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일본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고 허구연은 야구를 그만두었다. 낙담도 할 만했지만, 허구연은 법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운동선수가 아닌 법학자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허구연은 야구 해설가가 되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허구연은 법학적 사고로 논리적으로 무장된 상태였다. 당연히 법학적 사유 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착안점을 만들고, 설득력 있는 논거를 대는 방식이었다.

누구나 허구연처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다. 호기심을 가질 만한 이야깃거리를 만들면 좋다는 것이다. 옳든 그르든 논리를 세워 말하면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꾼은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다.

"청중의 호기심을 유도하라. 납득할 수 있는 근거로 설명하라. 그럼 계속 듣고 싶다."

매일경제

[이성민 미래전략가·영문학/일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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