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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의무복무 안 채운 해경 조종사…법원 "교육비 반환 의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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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 교육에 국가예산 1억1900만원 들어
'10년 의무복무' 서약서 썼는데 4년1개월만에 면직
법원 "기본권 제한하려면 구체적 법률에 근거해야"

조선일보

지난달 30일 오후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체육관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기술 적용 전시회'에서 공군 장병과 조종사들이 가상현실(VR) 기반 KT-1 비행교육훈련 체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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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09년 해양경찰청 소속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됐다. 2년여가 지난 2011년 8월 고정익 항공기(날개가 동체에 고정돼있는 항공기) 조종사 선발 공고를 보고 지원해 최종 선발됐고, 장기복무서약서를 썼다. A씨가 조종사로 최소 10년간 근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어기면 조종사 교육 과정에 들어간 교육비 등을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A씨는 이후 1년 11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들어간 경비 1억1900만원은 국가 예산으로 충당됐다. A씨는 4년 1개월간 해경 항공기 조종사로 근무했고, 2017년 11월부터 가사휴직을 쓰다가 면직을 신청해 지난해 3월 최종 면직 처리됐다.

국가는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A씨가 국가와 ‘사법상 계약’을 체결하고도 이를 어긴 만큼 교육비 등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A씨 측은 "서약서상 약정은 법률의 근거 없이 체결된 것"이라고 맞섰다.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와 평등·비례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규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박형순)는 최근 A씨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서약서에 따른 약정은 공무원인재개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제13조 제4항은 교육훈련을 받은 공무원에게는 ‘6년’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 기간 복무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훈련기간과 같은 기간을 의무복무하도록 한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에 따라 A씨가 의무복무기간을 채웠다고 본 것이다. 공무원인재개발법 시행령 35조에 따르면 6개월 이상의 국내훈련을 받은 공무원은 훈련기간과 같은 기간을 훈련분야와 관련된 직무분야에 복무해야 한다.

재판부는 "국가는 조종사 양성 과정에서 거액의 국가 예산이 투입돼 장기 복무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주장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면서 "장기 복무의무를 부여하는 별도의 근거 법령이 없는 이상 공익적 측면만을 강조해 관련 규정에도 반하고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하는 이 약정을 적법하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백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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