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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20분짜리 수술에… 의료폐기물은 쓰레기봉투 7개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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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후 감염관리 강화하자 병원 일회용품 사용 급증

소독하면 다시 쓸 수 있는 회진복·수술용 가위 등 모두 버려

조선일보

서울의 한 종합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 4명이 20분간 외과 수술을 마친 뒤에 나온 의료 폐기물. /김효인 기자


지난 8일 오전 10시 서울의 한 종합병원 외과병동 수술실. 환자 손목에서 도토리만 한 물혹을 제거하는 20분짜리 수술이 끝난 자리에 67L들이 의료 폐기물 박스 2개가 가득 찰 분량의 쓰레기가 쌓였다. 통상 마트에서 판매하는 가정용 쓰레기봉투(20L) 7개 분량이다. 의료진이 입었던 수술복뿐 아니라 사용하지 않은 수술복과 여벌 시트, 실수로 비닐만 뜯은 수술용 실도 한꺼번에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고무 튜브, 봉합용 스테이플러, 수술용 가위처럼 소독하면 재사용이 가능한 도구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의료진은 "몇년 전만 해도 이만큼은 아니었다"고 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최근 수년간 병원 감염 관리가 강화되면서 수술방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야 하는 쓰레기가 급증했다"며 "전에는 소독해서 다시 쓰던 드레싱 키트, 회진복 등도 모두 일회용품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경남·경북 곳곳에서 불법 방치 의료 폐기물 1000t 이상이 발견됐다. 의료 폐기물 발생량이 처리 가능 용량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도 의료 현장에서는 오히려 일회용품 사용량이 늘어나는 중이다.

병원 수 줄었는데 의료 폐기물은 증가

국내 의료 폐기물 발생량은 2013년 15만1438t에서 2017년 21만9013t으로 5년 새 1.4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의료 폐기물 소각장은 전국에 14곳뿐이다. 처리 가능 용량도 2015년 이후 18만9000t에 멈춰 있다. 문제는 종합병원이다. 종합병원은 배출 업종별로 봤을 때 의료 폐기물을 가장 많이 내놓는다. 전국의 종합병원 수는 2013년 346곳에서 2017년 333곳으로 13곳 줄어들었는데, 같은 기간 의료 폐기물 배출량은 6만8028t에서 8만7886t으로 5년 새 2만t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의료 폐기물 중 40%를 차지한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건 그만큼 일회용품 사용량이 늘어서다. 본지가 전국의 종합병원 의사 2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한 결과, 80%(20명)가 "최근 3년간 일회용품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의사들은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여야 하는 품목으로 간단한 상처를 소독할 때 사용하는 '드레싱 키트', 입원실 방문 시 착용하는 가운, 수술 후 손의 물기를 닦는 수건 등을 꼽았다. 과거에는 살균 후 재사용했던 품목들이다.

일명 '빅(big) 5'로 꼽히는 한 상급 종합병원 교수는 "간호사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병실에 드나드는데, 병실에 감염병 환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일회용 가운을 입어야 한다"며 "전에는 소독해서 재사용하던 것도 모두 일회용품으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했다.

"일회용품 권장한 적 없다"는 복지부

조선일보

종합병원 관계자들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사태 발생 후 정부가 감염성 관리를 강화하면서 일회용품 사용량이 폭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말 감염 관리 부분을 강화한 새로운 의료기관 평가 인증을 내놨다. 과거엔 감염병이 발생한 후 '관리를 잘하는지'를 봤다면 새 기준은 감염병 발생 전 '예방 및 관리를 위한 규정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표준 감염 예방 지침을 참고해 병원별로 의료기구 관리 세척·소독·세탁물 관리 규정을 마련하게 했다. 새로 마련된 지침에는 '복부 초음파 검사 후 부드러운 일회용 천이나 거즈로 젤을 닦아낸다' '소독제 용기는 일회용을 권장한다' '(수술 시) 제모가 필요한 경우에는 일회용 클리퍼(면도기) 사용이 권고된다' 등의 규정이 세세하게 들어갔다. 복지부는 "감염성 관리를 강화했을 뿐 일회용품 사용을 권장한 적 없다"고 주장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복지부가 내세운 인증 기준을 맞추려면 일회용품 사용을 늘리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의료계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의사는 "의료 폐기물 처리 용량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무조건 일회용품을 쓰라고 할 게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명확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포토]감염관리 강화에 일회용 사용 급증…곳곳 불법 의료폐기물 1000t 이상 발견돼

[김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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